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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통적 진보주의와 온건한 보수주의 비교
1. 전통적 진보주의
원래 ‘자유진보주의’는 자유주의(Liberal)와 진보주의(Progressive)의 합성어이다. 엄밀히 말해, 둘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자유주의는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고, 진보주의는 이를 행동에 옮기고자 하는 실천적 사고를 의미한다. 사실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전까지 민주당 자유진보주의 진영은 지지기반을 상실했고, 당권도 여러 갈래로 분열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때 새롭게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집단이 바로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건축가, 엔지니어 등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1970년대만 해도 공화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침체와 보수주의 반격 등을 보면서 이들의 정치 성향도 뒤바뀌게 되었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주도된 규제완화, 감세정책으로 보수주의 정책이 지속되면서 자유진보주의에 대한 정체성 위기가 대두되었다. 이때 뜻있는 몇몇 의원들은 재집권을 위한 대대적인 개혁론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새로운 변화의 방법으로 친자유기업정책을 내세우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민주지도평의회(DLC)’인데, DLC는 친노조주의나 좌파와의 끈을 끊어버리고 민생과 기업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명분으로 당내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민주당 내 4대 권력인 노조, 환경보호론자, 여성단체, 소수인종단체들과 각을 세워갔다. 이후 클린턴 대통령이 12년 만에 정권을 잡으면서, DLC는 소수파에서 민주당 내 다수세력으로 변했다. 역사적으로 민주당 내 당권은 친 노조주의와 친자유기업주의가 계속 대결하는 국면을 보여 왔다.
한편 당내에서는 DLC의 출현으로 친기업, 보수중도 모임도 결성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뉴뎀’과 ‘블로도그’ 그룹이다. ‘뉴뎀’은 핵…
2. 온건 보수주의
한편 골드워터 참패 이후 보수
의의 반격은 1960년대 민권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공화당이 대선에서 참패를 맛보았던 1964년이 보수주의 재결집의 해로 기록되고 있다. 그해 공화당 대선후보인 배리 골드워터는 민주당 린든 존슨 부통령과 벌인 대선에서 치욕에 가까운 최악의 패배를 기록했고, 골드워터의 패배는 많은 보수주의 선각자들에게 반성과 함께 전략을 재수립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골드워터 지지연설을 한 뒤 헐리우드 스타에서 일약 정치 스타가 된 레이건은 얼마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어 보수주의 결집을 외쳤고, 그 후 보수주의자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첫째, 보수주의 연합전선의 재구축. 둘째, 보수주의 인프라 구축. 후버연구소 등 기존 싱크탱크들을 강화하고 헤리티지재단 등 새로운 싱크탱크를 설립했다. 셋째, 보수주의 가치의 재발견. ‘가치’라 하면 총기소유, 가족 중시, 동성결혼 반대, 낙태 반대, 줄기세포연구 반대 등 이른바 도덕적 판단과 종교적 신념이 필요한 이슈들을 말한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이들 가치들은 소중한 것이지만, 한동안 등한시되어 왔다.
한편 제도권에서 보수주의 철학과 정책방향이 레이건 때 기틀을 잡고 깅그리치를 통해 각종 입법으로 실현되고 있는 동안, 비제도권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 보수주의 재건을 위해 세 가지 큰 흐름이 앞장서 나갔다. 이들은 기독교 복음주의, 풀뿌리 보수주의, 감세론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교회가 현실정치에 깊숙이 참여해야 한다고 믿고 범 보수주의 기독교세력의 단합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 미국 전체인구의 26%에 이르고, 이들의 영향력으로 북으로는 버지니아, 서쪽으로 캔사스, 남쪽으로 플로리다에 이르는 지역에 기독교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속칭 ‘바이블 벨트(Bible Belt)’가 구축되었다. 뉴딜정책 이후 남부의 바이블 벨트는 공화당의 든든한 텃밭이었다.
한편 골드워터 참패 이후 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