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근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과 경제체제를 둘러싼 대논쟁
1. 들어가며
근대 마르크스주의의 출현으로 경제체제를 둘러싼 대논쟁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극단적인 다원적 개인주의와 신고전파 경제학의 중용적 입장에 기초를 둔 정통파의 반응은 적대자들을 더욱 분열시켰다. 그러나 사회사상의 양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어떠한 이데올로기 논쟁에도 두세 가지 반응이 있기 마련이며 적절한 경제생활 조직의 수립이라는 과제는 또 다른 많은 문제를 내포하는 다양한 사상을 탄생시켰다.
그것은 눈금의 한 쪽 끝에 사회화된 재산 및 경제계획이 있고 도 한쪽 끝이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그러한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접근방법, 문제점을 정식하는 다른 방법, 그리고 다른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큰 세력을 가진 하나의 중간입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류와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 취급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체제가 두개의 적대적인 사회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사회적 투쟁을 변동의 원동력으로 간주하였다. 반면에 정통파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무수히 많은 개별단위 집합체로 보았으며, 이들 개인은 시장의 힘에 의해 불안정한 균형 속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 3의 경제사상가 집단은 국민과 사회를 여러 개인들이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각 개인은 이기심, 이웃에 대한 사랑, 호기심, 윤리적 가치관, 가회적.경제적 지위 등의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다. 국민과 사회의 본질을 이렇게 복잡하게 보는 견해는 여러 저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해 왔지만, 하나의 집단으로서 그들은 모두 …
2. 교황의 경제학
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및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등에서 타협을 통하여 교회와 국가 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때였다. 따라서 유럽 사회질서의 근간을 파괴할 정도로 위협적인 자본과 노동간의 투쟁,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간의 투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흔히 「노동자의 생활상태」(On the condition of Labor)라고 불리우는 「노동회칙」(Rerum Novarum;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에서 그는 ``이순간 대다수의 극빈층을 짓누르고 있는 궁핍과 비참에 대한 해결책은 반드시 강구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유방임정책을 고발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주장을 펴 나갔다.
노동자는 고용주의 비정함과 무제한적 경쟁의 탐욕 때문에 버림받고, 소외당하며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 탐욕스럽고 인색한 자들의 혹독한 고리대금업으로 인해 불행은 가중된다. 이러한 것에 더해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관습과 수많은 업종이 소수인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극히 부유한자들이 빈궁한 대중들에게 노예제도보다 별로 나을게 없는 멍에를 씌울 수 있게 되었다.
이 구절은 공인된 사회주의자의 저작과 거의 구별되지 않지만 그 뒤에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과 개인의 자연권으로서 사유재산을 옹호하는 주장이 뒤따랐다. 레오13세는 정당한 사회형태란 사회전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며, 경제적 관계가 순수한 이윤추구의 취득본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의와 타인의 이익존중에 의해서 형성되고 또 움직이는 사회라고 생각했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 내지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카톨릭의 사회사상을 기반으로 해서 그는 단지 시장의 이익보다는 큰 사회의 이익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시장경제의 거치른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사회의 이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