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리나라 무역의 역할과 위상, 한국무역 성장과정 분석
목차
Ⅰ. 한국에서의 무역의 역할과 위상
Ⅱ. 한국무역의 성장과정 분석
1. 한국무역의 태동기(1945~1961)
2. 한국무역의 기반 조성기(1962~1976)
3. 수출산업의 중화학 산업화(1977~1991)
4. 세계경제 패턴의 변화와 수출산업 고도화(1992~1997)
5. 무역흑자기반의 정착(1998~현재)
I. 한국에서의 무역의 역할과 위상
1960년대부터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성장 정책을 추진한 이래로 우리나라는 무역을 통한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통하여 현재는 중진국을 지나 선진국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우리나라에서 무역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960년에는 GNP에서 수출의 비중은 1%를 조금 넘고 수입은 18%에 달했으나, 이후 수출비중이 비약적으로 높아져서 2000년에는 수출과 수입비중이 모두 30%를 넘게 되었다. 수출상품구조를 보면, 1960년대에는 1차 상품이 약 절반을 차지하였으며, 제조업 수출은 대부분 섬유 등경공업 제품이었으나 2000년에는 1차 상품 수출은 거의 없고, 제조업 수출은 대부분 중공업 제품으로 크게 변모하였다. 이러한 수출품목의 변화와 함께 국내 생산구조도 크게 변하게 되었다…
-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 -
우리나라 무역의 국민경제적 의미를 살펴보면, 수출은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킬 뿐만 아니라 수출을 위한 투자를 촉진시켜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수출의 대 GDP 비중이 높아지면서 수출의 직접적인 경제성장기여도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II. 한국무역의 성장과정 분석
1) 한국무역의 태동기 (1945-1961)
해방직후 무역의 특징은 외환자
방 초기에는 상인과 군법 그리고 관료들이 서로 결탁하여 한반도를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빠르게 수탈하느냐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점차 조선에 대한 지배가 장기화점에 따라 보다 거시적, 장기적인 식민지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개항 초기 1인 중소상인의 진출이 주를 이루었으나 1920년을 전후하여 일본의 군수재벌을 중심으로 한반도 지하자원의 개발, 반출이 본격화되고 일부 광산업에 진출하지 않은 재벌 기업들은 철도, 도로, 금속기계 등에 진출하였다. 이들 일본 진출기업들은 주로 본국 공업의 보충적 역할을 위한 지사형태를 띠고 본국과의 연계 하에 경영되어 한반도 내에서는 각 부문간유기적인 연관성은 거의 없었다.
남북한의 경제 기반시설이 극히 편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술, 자본, 소재, 부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에 의존하였다가 1945년 해방에 이은 1948년 분단으로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1948년 8월 국토가 양분된 채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경제적 취약성과 정치적 혼란은 극심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일본인이 남겨 놓은 화폐남발과 재정적자 때문에 악성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해외동포의 귀환으로 실업상태는 극에 달했다. 이에 더하여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국의 경제를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밀어 넣었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은 미군정에 의한 임시적 과도기 정부였기에 모든 조치는 일시적 미봉적으로 이루어졌다. 경제정책은 우선 식량난 해소와 기초 생필품의 자급에 두어졌고 대외무역은 철저한 통제 하에서 이루어졌다. 해방 후 대외무역에 대한 공식적인 첫 조치는 1948년 1월 1일 발표된 군정법령 36호 "대외무역규칙" 이었다. 이 법령은 4개항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주로 남한과 기타 지역 간의 화폐와 재산 등의 이동은 군정장관 또는 그 지정기관의 허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했고 또 허가를 받지 않은 대외무역거래행위는 일절 금한다는 것이었다.
해방직후 무역의 특징은 외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