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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중관??유식비판과 대승기신론소
1. 중관과 원효의 비판
인도의 중관학파와 이를 계승한 중국의 삼론종이 반야경에 입각해 일체법의 自性을 부정하는 철저한 空觀철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공관은 궁극적으로 일체법의 유(속)에 이른다고 했다. 인도 중관학파의 시조 용수(150~250)는 “공의가 있기 때문에 일체법이 이루어지고 공의가 없다면 일체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중론 권24 관세제품 송14, 以有空義故, 一切法, 得成 ; 若無空義者, 一切法, 則不成)고 했다.
중국 삼론종의 길장도 “속(俗)은 불속(不俗)의 뜻이요, 진(眞)은 부진(不眞)의 뜻이다. 진속(眞俗)이 진속 아님을 깨치면 이것이 곧 무애(無碍)의 도이니, 무애의 도를 깨친 까닭에 무애의 용(用)이 있고, 무애의 용을 얻음으로써 일체법이 속(俗)이라는 뜻이 된다.”(길장, 이체의 권중)
이러한 논리가 과연 타당성을 지니는지 그것이 문제이다. 일체법의 자성이 부정(공(空))된다면 일체법은 환상과 같은 가유(假有), 가명(假名)에 불과하다. 그런 가유가 어떻게 다시 긍정(유(有))될 수 있는가? 원효는 이러한 중관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중관론.십이문론 등은 두루 집착을 파(破)하고 파(破) 또한 파(破)해져 능파(能破)와 소파(所破)를 다시는 허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니 이것은 ‘가고 두루하지 못하는’(왕이불편(往而不遍)) 논이다.”(대승기신론소 권1)
2. 유식과 원효의 비판
인도의 유식(유가)학파와 이를 계승한 중국의 법상종은 해심밀경(解深密經)에 입각해서 일체법의 무자성(공)만을 성하는 것은 밀의성이고, 공과 유를 갖추어 설하는 것은(중도)요의설이라고 한다. 일체법은 첫째 변계소집(遍計所執,가명), 둘째 의타기(…
이 때문에 원효는 유식학파의 이러한 관점을 비판한다.
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같은 책)
원성실상에 대한 이러한 확대해석은 유가행의 실천이 궁극에 이르렀을 때 단순히 무위진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그로부너 다시 ‘ 승용주편(勝用周遍)의 무루유위(無漏有爲)’를 일으키는 대로 전환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것을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한다. 팔식(八識, 아뢰야식.말라식.전육식)을 돌려 사지(四智,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묘관찰지.성소작지(成所作智))를 얻기 때문이다. 번뇌를 끊어 대열반(무위진여)을 얻고 소지장(所知障)을 끊어 보리(사지)를 얻는다고 한다.(성류식론 권9) 부처의 법신 또한 그런 두가지 전환에 의한 것으로 첫째 자성신(自性身, 진여와 대원경지) 둘째 수용신(受用身, 평등성지와 묘관찰지) 셋째 변화신(變化身, 성소작지)의 삼신을 말했다.(같은 책)
그러나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가 문제이다. 변계소집상 뿐만아니라 의타기상(8식)도 없어져 원성실상만이 있게 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타지상을 중심으로 변계소집상을 영모분, 원성실상을 청정분으로 규정하고 그 중 변계소집상만을 부정하는 이러한 입론이 어떻게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때문에 원효는 유식학파의 이러한 관점을 비판한다.
“유가론.섭대승론 등은 철저하게 심천을 세우고 법문을 판별하여 자기가 세운 법을 융통스럽게 버릴 길이 없게 된 것이니 이것은 주고는 빼앗지 못하는(여이부탈(與而不奪)) 논이라 하겠다.”(대승기신론소)
무위진여(원성실성)를 궁국의 가치로 설정한 이상, 이제는 그것을 버릴 수 없게 된 것을 지적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궁극적이 목적은 성불이고, 부처, 보살의 중생구제활동은 반야와 자비에 입각한 무루의 것이긴 하지만 그 또한 일종의 유위법(속용)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성유식론)
유식은 증익에 중관은 손감적인 견해이다. 전자는 유에 집착하고 후자는 무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원효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중관의 손감적인 견해이다. 왜냐하면 원효는 그것에 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