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 1절 : 서론
주제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에 대해 정리하고, 박제가의『북학의』 읽고 이것이 경제사적으로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고찰한다.
배경(책의 선정)
지금은 부산대학교 행정학과에 재학 중이지만 작년까지는 전남대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했었다. 조선 후기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실학에 관해서도 비중 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농학파(농업개혁론)의 토지개혁론에 대해서 자세히 배웠다. 하지만 중상학파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었다.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를 보더라도 중농학파 위주로 실학사상의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중농학파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학자들도 훨씬 더 잘 알려져 있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중상학파(상공업 진흥론)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상공업 진흥을 주장한 실학자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박제가였다. 박제가에 대해서는 『북학의』를 저술했고 청나라 문물을 적극 도입하자고 주장한 북학파라고만 알고 있을 뿐 그가 어떠한 배경에서 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당시 성리학의 명분이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보면 말이 안 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홍대용, 이덕무, 박지원 등의 다른 실학자 보다는 박제가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북학의』를 선택하게 되었다.
목적
첫째, 북학의에 나타난 경제학적인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경제라고 해서 상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농업과 상업을 통해서 일반 백성들의 생활의 질(복지, 후생)을 높이고자 했던 측면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둘째, 다른 실학자의 사상에 대해서도 이해해보고자 한다. 『북학의』를 중심으로 ‘청나라 문물의 도입’에 중심을 …
개괄
제 2절 : 실학사상
Ⅰ. 실학사상 -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실학이 등장하다 -
Ⅱ. 농업개혁론 - 실학자들, 토지 문제를 고민하다 -
을 거치면서 농촌 사회의 분해, 신분제의 동요, 통치 체제의 이완 등 체제 전반에 걸쳐 위기가 나타나자 다양한 재건책을 강구하여 이런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다. 농서 간행, 진전 개간, 향촌 지배 체제의 재편, 부세 제도의 개편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이라기보다는 단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변통의 계책에 불과했다. 오히려 당쟁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농민층은 갈수록 몰락해갔다.
그래서 실학자들은 정치 ? 경제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여기에는 토지 제도를 비롯하여 수취 체제, 행정 ? 군사 조직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실학자들의 개혁론은 신분제 혁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신분제에 기반 하여 운영되는 중세 사회의 부정이자 ‘반주자성리학’의 경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신분제 문제는 개혁론의 전체 성격과 주자성리학과 실학의 관계를, 나아가 실학자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규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농촌 사회가 분해되고 사회 신분 구성이 변하는 현실에서 비롯하였다.
Ⅱ. 농업개혁론 - 실학자들, 토지 문제를 고민하다 -
조선 후기에는 권세가나 양반 ? 토호, 서민 지주나 경영형 부농에 의한 토지 소유의 편중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자작농이 몰락하여 자소작농, 순소작농이나 무전농으로 전락하여 갔다. 이에 농민층의 몰락을 방지하고 생산력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경제 정책으로 토지 개혁론이 커다란 여론으로 떠올랐고, 이를 실학자들은 학문 과제로 삼아 많은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 대표적인 방안이 유형원의 균전론, 이익 ? 박지원의 한전론, 정약용의 여전론과 정전론이다.
1. 유형원의 균전론
유형원은 토지 공유의 실현, 결부제 폐지와 경무법 실시를 대전제로 하고, 그 위에서 토지의 재분배를 구상하였다. 그는 농가 1호당 1경의 토지를 분배하고, 4경에서 1명의 군인과 3명의 보인을 나오게 하여 병농을 일치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