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목차
서론 대공황 때의 세계 경제의 상황(배경: 주식시장)
본론 대공황의 직접적인 원인
대공황의 극복과정
결론 케인즈 경제정책의 중요시사점
본문내용
대공황의 직접적인 원인
세계경제대공황은 1929년 10월에 미국에서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작되어, 곧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은 자국의 농산물과 전쟁에 필요한 무기, 군수품 등의 공업생산물들을 1차 세계대전을 치루는 유럽의 각국에 판매하면서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즉 전쟁 상황이 미국의 경제발전과 생산력 증대를 가져온 것이다. 이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 뒤인 1929년까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경제는 거품에 불과했다. 1919년 갑작스런 종전은 미국의 과잉생산물의 판매시장의 급작스런 차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전후 약 10년간은 잉여생산물을 전후 유럽 국가들에게 원조하는 형식으로 소모하면서 경제체제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원조정책은 유효하여 1925년경에는 유럽 각국들도 전후복구를 마치고 전쟁 전의 수준에 도달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나라들도 이제는 자급자족할 만큼 농산물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공장은 정상적으로 가동되어 이제는 세계의 상품시장과 자본의 투자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 각국에게 있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 여파는 미국의 생산력과 구매력의 불균형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생산력의 증대와 구매력의 불균형이 경제공항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본문/내용
Report
케인즈의 일반이론:(정부의 개입)
케인즈와 대공황(Great Depression)
서론 대공황 때의 세계 경제의 상황(배경: 주식시장)
본론 대공황의 직접적인 원인
대공황의 극복과정
결론 케인즈 경제정책의 중요시사점
서론: 대공황 때의 세계경제의 상황
대공황(Depression of 1929)은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한 데서 발단된 공황은 가장 전형적인 세계공황으로서 1933년 말까지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여기에 말려들었으며, 여파는 1939년까지 이어졌다. 이 공황은 파급범위, 지속기간, 격심한 점, 등에서 그 때까지의 어떤 공황보다도 두드러진 것으로 대공황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것이었다. 당시의 대통령 H.후버(재임 1929~1933)의 필사적인 방지대책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계속 폭락, 1932년까지 국민총생산(GNP)을 1929년 수준의 56% 로 떨어뜨리고 기업도산이 속출하여…
이는 유럽 각국에게 있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 여파는 미국의 생산력과 구매력의 불균형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생산력의 증대와 구매력의 불균형이 경제공항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드디어 1929년 9월의 뉴욕 주식시장의 투기꾼들은 그들의 주식을 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0월 24일 이른바 ‘마의 목요일’에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에서는 주가의 폭락현상이 나타났다. 10월 29일에 주가 하락에 당황한 주주들은 기록적인 숫자인 1641만 30주를 매각했다. 이로 인해 주가는 더욱 떨어졌고,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과 은행은 많은 돈을 잃었다. 따라서 농민을 비롯해 은행에서 돈을 빌린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갚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황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저금을 인출하면서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은행이 파산했고, 은행이 파산하자 수백만 명이 저금한 돈을 날렸다. 또한 은행의 파산으로 지원받지 못한 산업의 생산이 하락하면서 실업이 더욱 증가했다. 미국의 경기 후퇴는 수입의 감소를 초래했고, 이것이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수지를 악화시켜 미국에 대한 채무의 원리금 상환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공황을 맞이하게 된 미국은 채무국가인 유럽제국에 채무이행을 촉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 1931년에서 1933년 사이에 공황은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열강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3년 런던에서 세계경제회의를 개최하여 공동으로 난국의 타개책을 논의했으나 실패하고 각국은 나름대로 타개책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대공황의 극복과정
세계 대공황당시 영국의 고전학파 이론가들은 공황 발생의 원인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파괴된 생산 기반의 상실에서 찾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당장 심각한 실업 문제를 두고서도, 생산 기반이 복구돼서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져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원론적 주장만 펴고 있었다. 실상 전쟁 중에 파괴된 생산 기반을 하루아침에 회복시킬 수는 물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