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중국의 각 시대별
관리 임용제도와 과거제도
가. 서론
나. 본론
1. 과거제도 이전의 관리 임용제도
1) 주(周)대의 향거리선(鄕擧里選)
2) 한(漢)대의 찰거제도
3) 위?진 남북조(魏?晉 南北朝)시대의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
2. 과거제의 시행과 시대별 발전 과정
1) 수?당(隋?唐) 과거제(科擧制)의 시행
2) 송(宋)대 과거제도(科擧制度)의 발달과 전시(殿詩)의 탄생
3) 원(元)대 과거제도의 부활과 민족차별정책
4) 명(明)?청(淸) 과거제도와 학교교육 결합
다. 결론
가. 서 론
인재를 뽑는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단순한 한가지의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한다는 것은 아주 그릇된 일은 물론이고 상식에도 어긋날 정도로 인재에 대한 가치가 다원화 되어 그 문제를 풀어나가기란 아주 난해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의 첫째 해결방법은 온고지신의 자세로 과거의 역사를 탐구하여 그 역사들을 가치있게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것이다. 그에 부합하듯 중국의 관리임용제도의 발달 과정에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 폐단과 발전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닮아보인다. 무…
들을 발굴하고 등용시키는 것은 우리가 지금와서 생각하듯 군주의 덕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중국의 통치집단의 정권을 견고하게 하고 나아가 과거제도를 만들어 발전시키고 유지하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으리라 본다.
2) 한(漢)대의 찰거제도
한은 모두다 알고 있는 인물, 유방의 나라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 천하가 안정이 되자마자 재빠르게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구공신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고조 11년 (기원전 197)에 유방은 조서를 내려 각급 신하들로 하여 유능한 인재를 추천하도록 했다. 유방의 이 조서는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실시한 전국적 규모의 사인 선발 제도였다고 한다. 조사의 규정에 의하면 지방의 각급 장관인 제후, 왕, 군수들은 반드시 조정에 인재를 추천해야 했으며, 만약 인재가 있다면 직접 방문 관찰하여 친히 그에게 출사를 권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청에서는 운송 수단을 제공하여 그들이 서울로 향하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그 행의(용모의 특징)와 연령을 기록하여 보냈다. 이것은 후세의 과거제도 가운데에서 향공의 최초 형태로서 "용모를 기재하고 공비로 보냈다." 방법은 과거가 실시되는 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공거라는 말도 후대 각지에서 경사로 올려 보내 시험에 응시케 하는 ‘거인’의 대칭이다.
그 후 지방관이 인재를 직접 관찰 방문하여 조정에 추천하는 방법이 점차 제도화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칭하기를 이를 ‘찰거’라 하였다. 한 무제라는 두 차례에 걸쳐 조서를 내려 관원에게 `품행이 현량 방정하고 직언· 극간을 잘 할 수 있는 자`의 추천을 명령하였다 아울러 피추천자에 대해서는 책문을 통해 채용하는 방식이 채용되었다. 이는 책문은 당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다방면의 정세에 대한 문제를 출제하고 죽간에 쓰게 하였던 것으로 응시자들은 서면으로 그 대책에 대해 답하였다. 그 후 책문과 대책의 형식은 청대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 중요한 형식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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