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사화
사화란 조선시대에 조신 및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조선 개국 이래 역대의 임금이 문치에 힘을 쓰고 유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고, 선비사회, 즉 유림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세조∼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사상·감정·지역관계 등으로 여러 파벌이 생겼는데, 이중에는 뜻이 상통하는 파도 있었으나 서로 대립·반목하는 파도 있었다. 이를 네 파로 나누면 훈구파·절의파·사림파·청담파 등이다.
본문/내용
조선시대 4대사화에
대하여
*사화
사화란 조선시대에 조신 및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조선 개국 이래 역대의 임금이 문치에 힘을 쓰고 유학을 장려했기 때문에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고, 선비사회, 즉 유림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나 세조∼성종 때에 이르러 그들 사이에 사상·감정·지역관계 등으로 여러 파벌이 생겼는데, 이중에는 뜻이 상통하는 파도 있었으나 서로 대립·반목하는 파도 있었다. 이를 네 파로 나누면 훈구파·절의파·사림파·청담파 등이다.
특히, 1498년(연산군 4)~1545년(명종 즉위)에 일어난 네 차례의 사화를 4대사화라고 하는데 그 중의 훈구파는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 높은 지위와 많은 녹전을 차지한 일파인데, 정인지,최항,이석정,양성지,권람,신숙주,강희맹,서거정,이극돈 등이다.
절의파는 세조의 왕위계승을 절대반대한 김시습 등의 생육신을 중심으로 한 파이다.
사림파는 경상도 밀양 출신인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일파이다. 사림파의 중심인물인 김종직은 동방성리학의 정통을 이어받은 대학자로서 그의 제자 중에는 김굉필·정여창·조위,김일손,유호인 등이 있…
려 지위를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고, 한 파가 승리하면 이에 대하여 새로운 반대파가 또 생겨 그것이 또다른 사화를 야기시켰다. 이러는 동안 정치의 기강은 더욱 문란해지고, 뜻있는 선비들은 관직을 버리고 당·서원 등을 세워 유생들의 집합 또는 강학의 장소로 삼는 동시에, 그들 일족의 자녀교육을 하고 이를 통하여 동족적인 당파의 결합을 굳게 하였다.
이와 같이 사화에 의하여 육성된 정치비판과 반대파에 대한 복수관념은, 서원의 발전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당쟁을 격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뜻있는 선비들의 향토 복귀와 교육 실시는 고관대작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공리적·세속적인 관학에 대하여 수양과 사색을 주로 하는 진리탐구의 참다운 학문을 하겠다는 사조와 경향을 낳게 하고, 이로 인하여 사학의 대연원이 열리게 되었다.
- 조선시대 4대 사화
1.무오사화
사림파의 중앙진출을 보면, 세조 때 중앙집권·부국강병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훈구 대신들이 권력·재산을 모으자, 성종 때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 정계로 진출하였다. 3사의 언론직 및 사관직을 차지하면서 훈구 대신의 비행을 폭로·규탄하고, 연산군의 향락을 비판하면서 왕권의 전제화를 반대하였다.
한편 훈구파는 사림파를 야생귀족으로 보고, 사림이 붕당을 만들어 정치를 어지럽힌다고 비난하여 연산군 이후 그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종직과 유자광은 일찍이 개인감정이 있었고,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으로 있으면서 훈구파 이극돈의 비행과 세조의 찬탈을 사초에 기록한 일로 김일손과 이극돈 사이에도 반목이 생기게 되었다. 유자광,이극돈은 김종직 일파를 증오하여 보복에 착수하였다.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하자, 실록청 당상관이 된 이극돈은,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것이라 하고, 이를 문제삼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