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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특이성
* 북한 사회주의 건설의 특이성
북한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성립되면서부터 전쟁의 폐해를 복구하는 한편,
본격적인 경제건설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경제건설노선은 매우
독특한 방향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self reliance에
입각한 자립적 민족경제를 기초로 하는 폐쇄형의 사회주의 건설노선이며, 1970
년 이후에는 `주체형의 사회주의`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제건설의 초기에 북한이 확립한 발전노선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회
주의의 본원적 축적`을 이루기 위해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 농업협동
화를 통해서 잉여를 창출하며, 그것을 달성시키기 위해 고도의 중앙집권화적 계획경제의 원리를 도입하였다. 이 같은 북한사회주의 건설노선의 기본 방향은 그 이
후 그들의 모든 사회주의의 건설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건설노선은 소련과 중국의 일반적인 발전노선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방법이었다. 초기의 그 형태는 `중공업과 경공업, 농업의 동시적 발전`이라
는 명제로 표면화되었지만 1960년대의 발전과정을 지나면서 철저하게 내부의 자
원만으로 경제건설을 이루고자 했으며, 그를 실행하기 위해서 국가적인 대중운
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그 대중운동은 당과 국가
의 정책적 차원을 뛰어넘어 북한의 유일적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으로 정립되고,
전 사회가 이를 기초로 재편됨으로써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여기에서 획득하려
하였다. 말하자면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의 방법을 통해서 주체사상이라는
전일적인 사회운영의 원리를 체계화하고, 또 다시 이를 통해서 사회주의 건설의
질적 단계를 고도화…
의 단절은 건설노선의 확립에 따른 방법의 문제였다면, 북한에서는 이
것이 전쟁에 의한 객관적인 상황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산업화를
먼저 이룬 국가와의 교류와 경험을 획득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들과는 철저
하게 군사적인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제적 고립상황에 놓이게 되었던 것
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하는 정책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중에 체제가 붕괴되는 시점에 임박
하여서도 북한은 소련의 직접적인 군사적 원조를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56년 이후 후루시초프의 평화공존노선은 남한과의 대치상태를 전제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한 쿠바사건에서 소련이 보여준
`굴욕적인 자세`는 북한으로 하여금 또 다시 소련의 후원에 대한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더욱이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의 과정 속에서 `민생단 사
건`을 경험함으로써 혁명과 건설에 있어서 외부의 영향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힘에 의존해야 함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 매문에 북한은 소련, 중국, 동
구 등의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았지만,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권의 경제블럭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제건설의 과정에 있어
서도 철저하게 독자적인 노선을 확보하면서 정치적인 독립을 유지하는데 주력하
였던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요인들은 북한이 독특한 사회주의 건설의 방법을 사용하여 오
늘날의 사회주의 국가체제로 확립하는데 작용을 한 상황적 변수들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총합하여 보면 한가지 중요한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은 북한이 세계자
본주의 국가와는 물론이고 사회주의 국가로부터도 경제적인 연결을 최소화하려
는 방향으로 정책을 일관되게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으로서 남한과의 군사적인 대치상태의 지속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
한다. `하나의 조선`이라는 일관된 정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