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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샘 (I am Sam)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잣대 중에 하나가 아이큐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지적 능력일 뿐이다. 천재에는 꼭 공부 잘하는 천재만 존재하지 않는다. 바둑의 천재, 축구의 천재, 음악의 천재 등. 주인공 샘은 일곱 살 수준의 아이큐를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양육권을 재판에 의해 박탈당할 처지이다. 아마 부모라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샘과 딸(루시)의 대화에서 결론을 찾아볼 수 있었다.
루시 : 아빠 하느님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예요? 아니면 사고로 이렇게 되신 거예요?
샘 : 무슨말이니?
루시 : 아빠는 다른 아빠들과는 다르다는 말이예요.
샘 :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래 미안하다.
루시 : 괜찮아요 아빠! 미안해 하지 말아요. 전 운이 좋아요. 어떤 아빠도 공원까지는 오지 않거든요.
샘 : 그래 우린 운이 좋지 운이 좋다구 그치?
루씨가 특별한 아이일수도 있고 어느 정도 인위적인 면도 있겠지만 딸은 진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며, 아버지 또한 사랑을 주길 원한다. 요즘에는 아이큐 못지않게 이큐의 중요성을 많이들 말한다. 과연 딸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이 중요한가를 판별하기엔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그러나 부모의 역할을 하는데 있어 아이가 사랑만으로 크는 건 아니다. 물론 사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가 자라는 …
두 가지 상황 예컨대 커피를 만드는 일과 법정에 가야 하는 일이 동시에 생기면 인지적으로 순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커가는 루시를 감당하는 건 그에게 시시때때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안겨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샘과 루시의 부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샘이 재판에서 지고
장애인 이었지만 자신의 딸 루시를 향한 아빠 샘의 사랑과 평범한 사람과 다른 아빠였지만 샘을 향한 루시의 사랑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판중에 사람들은 쉽게 말해서 지적 능력이 없는 샘이 어떻게 정상적인 루시를 양육할 수 있겠냐고, 제대로 아빠의 역할을 해줄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던지면서 샘에게서 아빠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다그친다. 궁지에 몰린 샘이 자신에게 다그치는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딸을 향한 자신의 사랑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사랑만으로는 아빠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재판이 있기 전날 샘의 변호사 리타와 샘은 밤늦도록 샘에게 주어질 질문들을 예상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연습한다. 그런데 재판 당일 마지막 질문에서 잘못되고 만다. 무엇이 지적능력이 일곱 살짜리인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보다 지적으로 뛰어난 딸을 양육할 수 있다고 봅니까? 라는 질문에 망설이던 샘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 나는 오랫동안 무엇이 한 사람을 좋은 부모로 만드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일관성에 관한 것이며, 인내에 관한 것이며, 들어주는 것에 관한 것이며, 만약 들어줄 수 없다면 듣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며,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나 역시 완벽한 부모는 아닙니다. 때때로 충분히 인내하지 못하고 그가 단지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만 그러나 우리는 함께 우리의 삶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파괴한다면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이 멋진 대사는 친구들과 함께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샘이 영화의 대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재판에서 샘은 지고 맙니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고 할말을 잃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다그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딸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빠 샘의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샘이 재판에서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