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중상주의 시대의 구빈제도
목차
* 중상주의 시대의 구빈제도
Ⅰ. 엘리자베스 구빈법
Ⅱ. 중상주의 시대 빈민들의 핍박과 구빈제도
1. 정주법
2. 작업장법
Ⅲ. 구빈제도의 변화와 인도적 구빈제도
1. 길버트법
2. 스핀햄랜드 제도
* 참고문헌
* 중상주의 시대의 구빈제도
1. 엘리자베스 구빈법
중상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구빈법(The Elizabethan Poor Law,
1601)은 사회복지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과거 중세시대의 개별적
이고 또한 민곤을 배타적인 시작에서 바라보던 관점을 제도적인 시각에서 바
라보게 하였다는 점이다.
구빈법은 엘리자베스 1세의 집권 43년째인 1601년에 제정되었고, 이 법은
실제로 1597년에 법으로 개정된 것으로 `구구빈법(Old Poor Law)`으로 불리
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추밀원(權密院)을 중심으로 빈민통제를 중앙정부에
서 관장하여 사실상 빈민들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복지 제도가 공식화된 것
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빈민들을 위한 구빈제도이기는 하였으나 빈민들의 권
리를 인정하지 않아 자율권이 많이 배제된 것을 살필 수 있다.
엘리자베스구빈법의…
되어
빈민들이 증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때때로 빈민감독관의 의견에 따라
치안판사가 지역사회의 부담이 되는 이주자나 빈민들을 전 거주지로 되돌려
보내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 제도는 극단적으로 1년에 은화 10파운드를 저
축할 수 없거나 그 액수에 해당하는 자산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함세남 외 , 2001).
정주법(The Settlement Act, 1662)은 사실상 빈민들을 제도적으로 억제한
법이였다. 또한 인위적으로 주거지를 제한하는 둥 인간의 기본권까지 제한한
것을 볼 수 있다. 정주법은 노동력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여 노동력을 효과적
으로 관리하기보다는 억제하여 자본의 흐름이나 노동력 흐름에 악영향을 주
기도 하였다. 따라서 정주법은 지배계급들이 판단한 이점보다는 부정적인 측
면이 많았기 때문에 강하게 비판을 받았다.
정주법은 어떻게 살펴보면 과거의 중세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즉 농노
가 그 지역에서 태어나 다른 지역으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정주법은 봉건사회가 무너지는 마지막 시기에 빈민 노동자들을 자
신들의 교구에 묶어 두기 위한 때늦은 노력의 결정판이고, 주민들이 책임져야
할 욕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편협한 지방주의가 극단적으로 표현
된 것이다(남찬섭 역, 2001).
정주법은 앞서 시행되었던 제도보다도 더욱 빈민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괴
롭힌 제도였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조항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개정을
요구받게 되었으며, 거주권에 대한 견해 차이로 논쟁이 심하였다. 특히 지배
계층의 경우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정주법이 노동력을 막는 것을 반대
하였다. 이러한 논쟁의 결과로 빈민들의 이동은 차후에 증명서 제도를 통하여
가능케 되었다.
2) 작업장법
1723년 제도화된 작업장법(Workhouse Test Act or Knatchbull` s Act, 1723)
은 나치블법이라고도 하며, 이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