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영국의 국민보험
목차
* 영국의 국민보험
Ⅰ. 자유당 정부와 사회개혁
Ⅱ. 의료보험과 실업보험
Ⅲ. 자본 · 노동 · 지주의 입장
* 참고문헌
* 영국의 국민보험
1. 자유당 정부와 사회개혁
1906년 총선에서 토리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 자유당은 이전의 빈민법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련의 사회복지정책들을 도입함으로써 영국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1906년의 교육법을 필두로 고용주의 산계보상 책임을 규정한 1907변의 노동자
보상법, 1908년의 아동법, 보호관찰법, 국가가 전국적인 직업소게소망을 갖도록
규정한 직업소개소법, 최초로 노인들에게 무갹출 연금을 지급하도록 한 1908년
의 노령연금법, 그리고 의료보험과 실업보험으로 구성된 영국 최초의 사회보험
인 1911년의 국민보험법 등이 개혁의 산물들이었다.
그 밖에 노동일과 최저임금에 관한 의미 있는 법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1908년, 내무성은 광부의 8시간 노동일을 규정하였다. 이는 성인 남자의 노동일
에 대한 최초의 국가 규제로서 노동당 하원의원들의 압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내무장관인 처칠이 주도적으로 만든 1911년의 상점법은 1주일에 한 번 반
나절 상점문을 닫도록 규정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TUC가 줄곧 요구해 온 법정
최저 임금제를 일부 수용한 1909년 상무성법이었다. 이 법도 처칠이 주도하였는
데, 고용주, 노동자, 중립인사가 동 수로 참여하고 중립인사가 의장을 맡는 위원
회를 두어 일부 산업에 한해 최저임금을 협의하도록 했다? 최저임금 협의대상은
여성과 이민 노동자가 많고 또 소규모로 운영되어 노조를 조직하기 힘든 봉제업
계와 같은…
이나
성질에 관계없이 진료 받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삽입시켰다. 양자 모두 사회보
험에서는 빈민법에서 중시되었던 구제가치가 있는 빈민(deserving poor)의 개념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원석조, 1996 : 39-40).
2. 의료보험과 실업보험
국민보험의 제1부이자 로이드조지가 `앰뷸런스`기 부른 의료보험은 공제조
합, 보험회사, 의사 등과 같은 강력한 기득권 집단들과의 장시간 협상을 거쳐 란
생하였다. 이미 조합원들에게 의료급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던
공제조합은 같은 사업 영역을 놓고 국가와 경쟁하기를 극구 거부하였다. 결국 정
부는 이들 공제조합에게 의료보험 운영을 맡김으로써 이들을 포섭할 수 있었다.
공제조합에게 의료보험의 운영권을 부여하자 유사업체인 보험회사에서 가만
히 있지를 않았다. 사실 보험회사의 수많은 인력은 의료보험을 운영하기에 충분
했고, 보험회사는 의료보험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
였다. 국가 입장에서도 이들 보험회사를 끌어들인다면 의료보험의 운영을 위해
별도의 운영기구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보험회사들은 로이드조지에게 실업보험
상의 미망인 급여와 고아 급여를 폐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 급여가 그들
의 보험상품의 하나인 사망보험과 경쟁관계에 놓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로이드조지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보험회사의 반대를 달랠 수 있었다.
의사들도 목소리를 냈다. 당시 의사들은 대부분 공제조합과 계약하에 진료서
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항상 공제조합은 진료비를 깎으려 했고, 이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가가 관장하는 의료보험을 거부할 이
유가 없었다. 그러나 국가 의료로 편입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영국의
학협회는 의료보험의 대상은 빈민법 대상 이상에서 일정 소득(연소득 100파운드)
이하인 사람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였다.
여하들 협상 끝에 연소득 250파운드 이하 16-70세의 모든 육체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