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엘리자베스 빈민법의 변화) 정주법, 토마스 길버트법, 스핀엄랜드법
목차
* 엘리자베스 빈민법의 변화
Ⅰ. 정주법
Ⅱ. 토마스 길버트법
Ⅲ. 스핀엄랜드법
* 참고문헌
* 엘리자베스 빈민법의 변화
1. 정주법
구빈행정의 역사는 빈곤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재정적 책임 간의 갈등의 역사
이다(Bruce, 1961 : 37). 재정 형편이 빈약한 교구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빈민의 수를 줄이거나 구빈의 수준을 낮추려고 하였고, 따라서 빈민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
기 짝이 없었다. 빈민은 보다 나은 생활환경이나 일자리 또는 교구를 찾아다녔으
나, 귀족계급은 자신의 농지에 유입해 들어온 농촌 빈민에 관대하지 않았다.
1660년대부터 농촌 인구,특히 빈민들이 대규모로 도시로 유입되자 구빈을 자
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입장에 있던 도시 교구는 위기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런데 각 교구가 자체적으로 구빈을 책임지게 됨으로써, 거주지가 불분명
한 빈민을 어떤 교구가 책임지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세기 이후 반 부
랑자적 빈민법들은 부랑자를 그가 속한 교구로 돌려보내길 기대하였으나, 그 판
단이 애매한 경우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빈민법은 부랑자가 태어난 곳, 그것이
불분명하면 1년간 거주한 곳 또는 거처 온 마지막 교구로 정하고 있었다. 주민들
이 구빈세 증액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구빈감독관들은 가능한 한 자신
들 교구가 책임져야 할 빈민을 억제하려 했고, 따라서 항상 법정은 이 판정을 받
아야 할 사람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이런 소송에 든 비용이 구빈 비용보다 많았
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빈민법 기록은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가련한 가족들과
…
마련하였으나, 다른 지역의 모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Jones, 1991 : 6-7).
빈민들의 노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생각은 1722년의 에드워드 첫치불법
(Sir Edward Knatchbull`s Act) 또는 작업장법(the Workhouse Test Act)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 법은 작업장을 부랑 억제와 이윤 획득 양쪽을 위해 활용하도록 촉진하
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법에 의해 모든 교구가 작업장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교구들이 영세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업장을 운영할 능력이 없었
다. 심지어 방 하나에 병자, 노인, 고아, 미혼모를 동시에 수용한 경우도 있었다
(Fraser, 1984 : 35).
그리하여 영세한 교구들은 교구연합을 만들어 빈민구제 비용을 분담하였다.
사실 대규모 교구만이 빈민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구들이 연합하여
이를 설립하려 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1782년의 토마스 길버트법(the Thomas Gben Act)은 이를 허용한 법이었다. 1834년이 되면 900개의 교구가67개의 연합
을 결성하게 된다. 교구연합은 유급 사무원을 채용했는데, 이들은 사회사업가의
모태가 되었다. 길버트법은 또 원외구호를 조장하였다. 구빈행정가의 입장에서는
부조금이나 구호물품이 가장 손쉽고도 적절한 구제방법이었다. 또 구빈감독관이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을 모아 여러 농민들에게 돌아가며 고용시킨 제도인 순환
고용제(roundsman system)도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때문에 구빈감독관과 민민 간에는 마찰이 적지 않았고, 농장주들도 불만
에 가득 찬 이들을 고용하기를 꺼렸다.
길버트법에 따라 노동능력빈민과 실업자에게 일자리 또는 구제가 제공되었으
며(무제한의 원외구호 제공), 구호물품과 금품이 주어졌다. 이것은 노동능력빈민에
대한 일 제공, 노동 무능 빈민에 대한 현금급여, 나태한 자에 대한 교정을 원칙으
로 한 엘리자베스 빈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