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훈려의 역사
목차
*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훈련의 역사
Ⅰ. 제 2차 세계 대전 후: 문화간 훈려의 탄생
Ⅱ. 1960년대와 대학교 훈련 모형
Ⅲ. 1970년대와 인간 관계 민감성 모형
Ⅳ. 1980년대와 통합적/대안적 학습 모형
Ⅴ. 문화간 훈련의 현재 상태
* 참고문헌
*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훈련의 역사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훈련의 역사적 발전 과정은 몇 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제2차 세계 대전 후: 문화간 훈련의 탄
생, (2) 1960년대와 대학교 훈련 모형, (3) 1970년대와 인간 관계 민감
성 모형, (4) 1980년대와 통합적/대안적 학습 모형, (5) 현재 상태이다.
I. 제2차 세계 대전 후: 문화간 훈련(Intel-cultural Training)의 탄생
문화간 훈련과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의 탄생은 미국에서 해외근무
연구소(the Foreign Service Institute)가 수립되었던 1946년으로 소급한
다(Leeds-Hurwitz, 1990).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국
제적 유대 관계를 재수립해야 할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부딪혔다. 그
러나 당시 미국의 외교관, 기술자, 기업인은 해외 근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해외근무연구
소를 만들고 에드워드 티 홀(Edward T. Hall), 조지 트래거(George
Trager), 래이 엘 버드휘스텔(Ray L. Birdwhistell) 등과 같은 유명한
문화인류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을 연구소 스태프로 일하도록 했다.
이 학자들은 기존의 언어 훈련과…
훈련에
대한 윤리적 토대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III. 1970년대와 인간 관계 민감성 모형
(Human Relations Sensitivity Model)
대학교 모형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훈련자들은
또 다른 접근 방법, 즉 인간 관계 민감성 모친을 채택했다(Althen,
1975). 이 모형은 초점이 거의 전적으로 경험적이고 참여적인 학습에
맞추어졌다는 점에서 대학교 모형과 뚜렷하게 달랐다. 경험적 학습
활동은 단순한 정보의 획득보다 개인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 목적
을 두었다. 이러한 훈련은 자연히 훈련생들 자신과 문화가 다른 사람
들 사이에 가치와 신념 체계, 태도, 그리고 편견 등을 둘러싼 대결과
충돌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 관계 민감성 모형은 오히려 환영
을 받지 못했다. 후프스(Hoopes)는 이 모형이 환영을 받지 못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그 모형은 지나치게 대결과 긴장
을 필요로 했다. 둘째, 훈련생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 처리 기술
과 디브리핑(debrieflng) 기술을 필요로 했다. 셋째, 훈련생들 사이에
저항과 좌절감을 불러 일으켜 결과적으로 학습이 억제되었다(Hoopes,
1979).
비록 인간 관계 민감성 모형이 수동적이고 인지적인 대학교 모형
에 대한 반발로 등장하긴 했지만 훈련생들이 문화간 이슈들을 이해
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 틀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개념적 안
내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상태에서 훈련생들이 문화간 대결이나
충돌을 하도록 만들었다.
인간 관계 민감성 모형은 훈련생들이 문화간 대결이나 충돌에 잘
대응할수록 문화간 상호 작용도 효과적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토대를 두고 훈련을 실시했으나 지나친 대결은 반생산적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극단적인 형태의 민감성 훈련은 곧 폐지되었다.
인간 관계 민감성 모형은 인간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토대로 이전
모형보다 개선된 훈련 모형이라는 이유로 미국 내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