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빈곤조사]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목차
* 빈곤조사
Ⅰ.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Ⅱ. 라운트리의 요크시 빈민조사
* 참고문헌
* 빈곤조사
리버풀의 선박회사 소유자인 찰스 부스(Charles Booth)가 런던시 빈민의 생활실
태를 자비로 실증적으로 조사하여 그 결과를 1889년 "런던 시민의 생활과 노동
(Life and Labour the People London)"이란 책으로 발표하였다. 1901년에는 요크시 소재 한 가족 회사의 젊은 실업가 씨봄 라운트리(Seebohm Rowntree)가 부스의 조사 결과에 큰 감명을 받아 역시 자기 부담으로 당시 전형적인 지방도시인 요크시의 빈민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여 "빈곤 : 도시생활의 연구(Poverty : A Study of Town Life)"란 책을 발간하였다.
이 두 조사는 사회복지의 역사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이들의 조사가 당시 빈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편견을 수정하는 데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 빈곤의 주된 원인이 노령, 질병, 실업, 낮
은 교육수준 등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가난은 가난한 이의 성격적 ? 도
덕적 결함의 결과라고 굳게 믿고 있던 시민들의 생각이 편견임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빈곤대책의 초점을 빈민의 정신상태보다는 그들을 둘러
만 사회적 환경에 두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행한 대규모 조사, 특히 찰스 부스의 사회조사는 현대 사회과학
적 조사방법론의 효시가 되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I. 찰스 부스의 런던시 빈민조사
부스는 회사 경영에 사용되는 새롭고 조직…
했다. 제1권은 동부 런던만을 조사했으며, 점차 대상을 확대하였지만 런던 전체
부족했지만, 사회복지정책과 사회조사연구방법론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켰다. 그는 최초로 빈곤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누가 빈민인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또 대규모 사회조사의 개척자였고, 초보적이었지만 사회계급을
범주화했으며, 사회적 대책의 최저기준을 암시했다(Jones, 1991 : 61-63).
한편 찰스 부스가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서라도 빈민에 대해 조사해야 하겠다
고 결심한 배경에 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스는 사회민주
연맹(the Social Democratic Federation, SDF) 노동자계급에 관한 조사가 빈곤의 확대를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여겨 스스로 빈곤에 대해 조사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
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SDF가 1883년 이전 어느 때, 런던에 사는 노동자
계급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노동인구의 25%가 가난하다는 것
이었다. 이에 대해 조사가 잘못되었고 빈곤이 과장되었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완
강한 보수주의자였던 부스도 노동인구의 SDF의 조사결과가 과장되었다고 확신
하여 자신의 힘으로 직접 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통설은 SDF의 주도자였던 하인드맨(Hyndman)의 자서전에 SDF의 전신인
민주연맹(the Democratic Federation)이 상기와 같은 조사를 실제로 한 적이 있으며, 또 찰스 부스라는 청년이 자신을 찾아와 SDF의 조사가 잘못되었고 조사대상을
런현 전 지역으로 확대하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며, 자기가 사비를 들여 런딘시
노동자들의 생활실태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을 남긴 데서 비
롯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루빈스타인(David Rubinstein)은 다른 견해를 제시하였다. 즉,
하인드맨이 자서전에서 밝힌 SDF의 빈곤조사는 사실은 실업에 관한 조사였으며,
런던 시민의 25%가 가난하다는 것은 실제로는 폴 몰 가제트(Pall Mall Gazette)지의 조사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