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봉건사회와 빈민법] 봉건사회의 계급, 인클로저와 부랑자
목차
* 봉건사회와 빈민법
Ⅰ. 봉건사회의 계급
Ⅱ. 인클로저와 부랑자
* 참고문헌
* 봉건사회와 빈민법
1. 봉건사회의 계급
빈민법은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세 봉건제(feudalism)는 가신이 봉
건영주 또는 국왕으로부터 봉사의 대가로 받은 봉토를 뜻하는 라틴어 `페우둠
(feudum)`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봉사란 군사적 의무, 즉 일정한 수의 기
사를 유사 시에 영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봉건사회의 지배층은 귀족과 겐트리(gentry, gentleman의 집합명사)와 같은 지주
귀족들이었다. 귀족은 공작(duke, 가장 높은 직위의 왕실 혈통 귀족), 백작(earl), 후작(marquis), 자작(viscoutit) 그리고 가장 많은 수의 남작ro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귀족 바로 다음 층인 젠트리는 대지주들로서 일부는 기사(knight)작위를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영지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14세기 중엽
부터는 치안판사직을 맡아 지방의 범죄와 비행을 조사하고 처리하는 권한을 가
졌으며, 점차 주 장관이 맡아 행하던 중앙정부의 명령을 집행하는 의무를 떠맡게
되었다.
젠트리 밑에는 농촌의 자영농민인 요먼(yeoman)과 도시의 상인, 법률가 등의 중
간계층이 존재했다. 요먼은 대체로 자영농이면서 소작인을 몇 명 거느렸다. 상인
들은 해외 무역과 사치품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증세 후기부터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였다.
성직은 토지귀족과 함께 지배층의 일원이었다. 그렇지만 사회 각 계층, 예컨대
평민이나 농업 노동자의 자식들도…
다. 16세기가 되면 농노제는 명목상으로만 존재
했을 뿐 실제로는 거의 소멸되었다(박지향,1997: 274).
그리고 지배층 내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17세기 중엽이 되면 귀
족들이 전투라는 전통적 임무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들은 전쟁에의 복무 대신
각종 이윤사업에 투신하여 부를 축적하는 데 역량을 모았다. 그 대표자들이 젠트
리였다. 이들은 광대한 토지의 경작과 인클로저(enclosure)를 통해 농업 자본가로의 길을 걷게 되고 영국 자본주의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II. 인클로저와 부랑자
봉건 농민들 대부분은 낮은 농업생산성으로 인해 만성적인 빈곤 상태에 있었
으며, 모두 토지에 긴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농토로부터 내
몰아 부랑자로 만든 사건들이 있었다. 바로 흥작과 인구 증가, 그리고 인클로저
였다. 특히 인클로저는 부랑자를 양산시킨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헨리 8세의 대법관이었던 토마스 모어가 자신의 저서 "유토피아"(1516)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라는 유명한 문구로 표현한 인클로저는 16세기 국제적
인 양모가격의 상승으로 양 목축업이 호황을 누리자 지주들이 자신의 농토와 공
유지를 양 목장으로 바꾼 것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초까지 파상적으로 계속된 농
토와 공유지의 울타리치기를 말한다(토지가 경작지로 사용되면 많은 농업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양 목장으로 전환되면 소수의 목부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농민들이 농지에서 쫓겨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농민봉기 등 소요를 우려한 국왕이 인클로저를 저지하려 했으나 내
전과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젠트리들의 힘이 강화되자 인클로저는 더욱 가속화
되었다. 18세가 되면 경작지의 절반 가량이 인클로저되었으며, 18세기 말에는 지
주들이 경작지의 75%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중반이 되면 잉글랜드
인구의 40-50%가 경작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농업노동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