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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스토리텔링] 루브르박물관에 대해서
* 루브르박물관
파리의 센 강변 리볼리 가에 위치한 루브르박물관은 규모가 어마어마하
다. 이 박물관은 르네상스시대의 건물이며 유럽에서 길이가 가장 긴 건물이
다. `ㄷ` 자 형태로 이를 곧게 펴면 에펠탑 높이의 약 3배가량 되며, 박물관
주변을 따라 걷게 되면 약 5km에 달한다. 이 궁전의 전시장 면적만 해도 6
만m제 달하는데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는 무려 40만여 점이고, 일반에게
공개되어 전시하고 있는 작품 수만 해도 3만5천여 점이나 된다.
루브르(Louvre)라는 이름이 요새 /성채를 뜻하는 라틴어 루파라(Lupara)
에서 유래하였다 1190년에서 1202년까지 루브르는 국왕 필립 오귀스트
(Philippe Auguste)가 바이킹족의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센 강변에 건설된 `성채`였다. 파리의 가장 취약한 곳에 세워진 이 요새는 당시
왕들의 재화, 무기, 고문서 등을 모아 간직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1360년에 프랑스 왕 샤를르 5세는 이 밝은 성채에 큰 창문을 달고, 정원
에는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위엄 있는 나선형 계단을 설치하여 궁전으로
만들었다. 이 계단을 통해 새로운 건물과 연결되었고, 내부에는 조각들과
색유리를 설치하고 타피스리를 깔았다. 또한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열
개의 탑을 설치함으로써 이곳은 `화려한 궁전`으로 탈바꿈하였다. 또한 샤
를르 5세는 북서족의 둥근 탑 안에 개인 서가를 만들어 973권의 귀중한 필
사본을 소장하였다.
1528년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
의 화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퐁텐블로 궁의 왕실 소장품들을 루브르궁
에 옮겨오게 되었다. …
일부를 전시하여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종전 왕실과 귀족들, 그리고 전문적 연구가들에게만 열려 있던 박물관이 사상 처음으로 공공문화 기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왕궁으로 사용되던 루브르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프랑스 혁명이후이지만, 박물관으로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된 것은 나폴레옹 때의 일이다.
초기에 박물관은왕실이 소장한 예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로서 미술 전시관이었다.
1802년 이후엔 박물관장으로 취임한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의 책임 아래 전시장이던 대갤러리도 계속 확장했다. 대갤러러에는 회화 작품을, 소갤러리 1층에는 고대 유물을 주로 전시했다.
나폴레옹 1세는 루브르의 소장품 수집에 있어서 가장 큰 공헌자이다.
1803년 그는 미술관을 `나폴레옹 미술관`으로 개명하여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수집품들을 소장함으로써 소장품의 질과 양 그
리고 그 가치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220m x 110m 크기의 나폴레옹 정원 지하를 활용하고 박물관의 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된 유리 피라미드는 중앙에 큰 피라미드가 하나, 주위
에 작은 피라미드 3개가 있고 7재의 분수로 둘러싸여 있다. 피라미드 가장
자리에 조성한 분수는 밤이면 더욱 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물어낸다. 피
라미드를유리로 만든 덕분에 지하층에도 자연채광이 가능하고, 색이 없는
보통 판유리를 줬기 때문에 지하에서 루브르궁전을 올려보아도 자연색 그
대로 볼 수 있다.
이 피라미드는 루브르로 들어가는 출입구로서 매우 흥미롭다. 중앙의 피
라미드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면 매표소와 안내소가 있고, 루브르 박물관의
세 전시관인 쉴리관(Sully), 드농관(Denon) 리쉴리에관(Richelieu)으로 통하
는 입구가 나온다(그 외에 각종 회의실, 서점, 카페 등의 편의시설도 이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각 전시관은 지하의 넓은 공간인 나폴레옹 홀과 이어진 지하층
과 지상3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