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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와 급진자유주의에 대해 논하시오.
* 한나 아렌트와 급진자유주의
칼 슈미트의 정치 개념이 권력 행사에 대한 현실주의적 해석의 전형인
막스 베버적 노선에 더 친연성을 보인다면, 한나 아렌트는 베버적 의미의
권력이 강권과 폭력을 일방적으로 체화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렌
트 정치관에 있어 필수적인 진정한 권력의 이미지는 강제와 폭력을 배제한
자발적 참여와 토론으로부터 비로소 창출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정치
적인 것`의 이념을 해명함에 있어 슈미트와 아렌트가 정반대 `입장을 표명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슈미트의 정치 개념이 현실 정치(Realpolitik)지향의
극단화라면, 아렌트의 정치관은 규범적 정치철학의 한 정점을 구성한다.
물론 아렌트는 정치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극력 회피했으며, 자신을 차라
리 정치이론가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여기에는 고전적 정치철학의
도덕주의적 흐름에 대한 아렌트 나름의 일정한 반성이 개입한다. 아렌트는
규범론의 성급한 개입이 `정치적인 것`의 수행적이고 미학적인 성격을 패
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의
이념을 현실주의와 규범론의 복합적 상관관계의 구도로 의도적으로 단순
화시킨 나의 시각에서 볼 때 아렌트는 정치철학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전혀 `정치적인
것`의 반열에 포함시킬 수 없겠지만 앞서 나는 슈미트의 입론이 자유주의
정치관의 평면성을 극복하면서 어떻게 급진자유주의 정치를 풍부하게 하
눈 데 기여할 수 있는지의 이론적 단초를 논의한 바 있다.
`정치적인 것`의 이념에 대한 아렌트의 입론은 정치적 실천이야말로 유
적 존재인 인간…
소비의 대상이 되는 사물들은 그 순환적 성격 때문에 내구성이
가장 짧을 수밖에 없다.
생산활동(work, 제작)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존활동과 소비의
영원한 순환을 깨뜨리고 나와 자연환경과 질적으로 상이한 인공적 사물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규정된다. 여기서 인간은 제작인(homo faber)
으로 형상화되며, 그의 생산활동은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자연세계를 조
을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활동은 인간에게 특유한 활동의 첫 단계를 구성
하며, 제작되는 인공물들은 생존활동의 대상들보다 훨씬 내구적이기 때문
에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변덕스러운 살을 보완하는 안정성과 항구성을 제
공하게 된다. 다음에서 살펴보겠지만 생존활동과 생산활동에 대한 아렌트
의 논술은 현대성의 쌍생아인 마르크스와 로크의 노동 개념을 직접 걱냥하
고 있다.
인간활동(action, 행위)은 사물이나 대상이라는 매개물의 개입 없이 사람
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유일한 활동이다. 인간활동의 존재론적 근거는 아
렌트가 복수성(複熱注, multiplic)이라고 부르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만
동시에 각자 독특하다는 근원적 사태로부터 도출된다. 인간은 말과 행동
을 통해서 노동이나 작업의 대상적 사물들의 공간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인 것`의 지평을 창발적으로 조탁함으로써 스스로가 한날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간임을 증명해내는 것이다. 말과 행동은 노
동을 규정하는 필연성이나 제작을 지배하는 효용성의 원칙으로부터 독자
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 본연의 활동이며, `당신은 누구인
가`라는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인격적 기제이다. `정치적인 것`의 지평은
인간활동을 함께 수행하는 데서, 즉 `말과 행동의 나눔"으로부터 구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 폴리스도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도시국가를 지칭한다기보
다는 함께 말하고 행동하는 역동적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람들의 민주적 조
직을 의미하게 된다.
활동적 삶 가운데서 인간 본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