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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비평에 입각한 귄터 그라스의 소설 『넙치』연구
I. 서언
70년대 동등권을 요구하며 대두된 페미니즘에 대한 그라스의 첫 번째 성찰이 담겨 있는 작품 『달팽이의 일기』에서 작중 인물 쯔바이펠은 양성의 대립과 투쟁이 지양된 유토피아를 꿈꾼다.1) 그러나 이후 나온 소설『넙치』에서는 양성 합일로서의 유토피아의 도래가 지극히 회의적이고 비관적으로 서술된다. 기젤라 잔은 그라스가 시대의 모순을 통찰하며 변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진보적 지식인이지만, 여성에 대한 의식은 유감스럽게도 “보수적이며 거의 전근대적”인 것으로 규정한다.2) 왜냐하면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여덟째 달「아버지의 날」패러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70년대 등장한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그라스의 거부와 경고를 담은 “여성적대적” 작품으로 특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3) 70년대는 논리의 다원화, 대중문화의 부상과 확산, ‘작가의 죽음’ 등 탈중심화, 탈정전화 현상이 가속화된 시대로서, 지금까지 역사?사회발전의 원리로 인식된 근대적 주체의 객관성, 합리성, 논리성 등에 대한 신념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며 해체되어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페미니즘은 근대적 주체의 기능을 발전이 아닌 퇴행적 통제?억압기제로 파악하고,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인문, 사회과학의 패러다임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시하였다.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페미니즘 문학비평?연구는 지배적 부권전통에 의하여 여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억압?왜곡?오해되어 왔는가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학에 형상화된 다양한 여성이미지를 분석함으로써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폭로?수정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그라스의 소설 『넙치』를 중심으로 이 작품을 집필한 그라스의 서술 의도를 작품 속의 일련의 여성형상들을 통하여 살펴봄으로써, 진보적 지식인이지만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보수성과 남성중심주의적 한계를 드러내는 그의 성의식을 페미니즘 문학비평을 토대로 고찰하고자 한다.
I…(생략)
II.1. 여성성-자연적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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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해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상은 페미니즘 비평에 의하면 여성이 적응해야만 하고 거기에 맞추어야만 하는 규범적 기능을 할 뿐, 여성의 본질이나 실재 여성이 처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상의 배후에는 여성은 정신적 존재가 아닌 육체적?감각적 존재이며, 여성은 언제나 정신적 존재인 남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보조물이거나 도피대상으로 기능한다. 자연에 비유한 이러한 여성성의 왜곡은 실재 그리이스 신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해 왔다.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며 남편과 가정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하며 봉사하는 여성은 성녀로 미화되며, 남성의 영역, 권위에 도전하는 주체적 여성은 본분을 망각하고 불화를 조장하는 마녀로서 단죄되었다. 자연으로서의 여성은 이와 같이 문학에서 성녀 또는 악녀 이미지를 통하여 인류발전에 있어서 희망 및 파괴의 역할을 담지하는 표상으로 기능하여 왔다.5)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여성을 자연과 일치시키는 관점을 문명비판적 관점에서 자연에 대한 남성의 도착적 왜곡된 표상의 관점에 입각하여 분석한다. “자연의 지배는 인간의 지배를 내포한다. 모든 주체는 외적 자연, 인간적 그리고 비인간적 자연의 정복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자연을 그 자체 내에서 정복해야만 한다.”6)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따르면 인류의 발전은 자연의 정복을 의미하며 자연인 여성은 주체인 남성에 의하여 정복되어야 할 대상에 속한다. 왜냐하면 “여성은 주체가 아니다. 여성은 생산하지 않고, 생산하고 있는 것을 보존하며 가꾼다. (...) 무한정 자연을 지배하는 것, 우주를 무한한 사냥터로 변화시키는 것이 수 천년이래 꿈꾸어온 소망이었다. (...) 자연의 정복이 진정한 목표가 되는 곳에 생물학적 열세는 낙인으로 남는다. 즉 자연에 의하여 특징지워진 나약함이 폭력행위를 야기시키고 있는 상처”라는 것이다.7)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왜곡된 여성의 표상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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