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확대 지향’의 동남아 지역주의:
“동아시아 공동체”의 건설은 가능한가?
I. 문제제기
동남아와 동북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지역주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동아시아의 지역협력은 ASEAN사무국의 한 관리의 평가처럼, “급속하게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Chalermpalanupap 2002, 1). 이 움직임이 공식적인 지역협력체를 낳고 뚜렷한 지역정체성을 확립하여 견고한 지역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것이란 예측은 지나치게 때 이른 것이지만, 1970년대 말까지 동남아에서 끊이지 않았던 분열, 대립과 전쟁,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된 범동남아적 동남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지금까지 해소되지 못한 동북아의 불안정한 지역질서를 감안한다면,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태동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주의의 태동과 관련하여 우리의 흥미를 더욱 유발하는 것은 이러한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강력하고 부유한 동북아 국가들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동남아 국가들과 ASEAN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는 우선 동남아 국가와 동남아인들이 민족, 국민, 지역 수준에서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협력, 통합, 정체성을 시기별로 고찰한다. 시기별 고찰을 통해 개별적인 탈식민국가들의 단순한 집합으로 출발했던 동남아에서 지역주의가 태동하여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한 동남아 안에 머물렀던 지역협력이 어떻게 동아시아라는 더 큰 경계를 지향하게 되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동남아가 1950년대의 민족주의와 제3세계주의, 1960-70년대의 양극적 지역주의, 1980-90년대의 동남아 지역주의 등을 넘어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로 지역협력과 통합 가능성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과 배경을 살펴 볼 것이다.
동남아 지역주의의…
인도차이나공산당이 창설되어 국제공산주의를 천명하였지만, 이 혁명정당은 실제로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다. 1950년대 영국이 지원한 말라야연방의 독립에 무력적으로 “대결”(Konfrontasi: Confrontation)한 수까르노와 민족주의자들은 말라야-필리핀-인도네시아를 묶는 마필린도(Maphilindo)를 주창하였지만, 이 역시 반제투쟁과 국민동원을 위한 선전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태국과 필리핀 등 친미 정권을 앞세운 지역안보기구(SEATO: Southeast Asian Treaty Organization)나 지역협의체(ASPAC; 아시아태평양각료이사회)는 미국의 안보이익에 봉사하였다.
요컨대, 1960년대 말까지 동남아는 신생국가의 당면 과제인 독자적인 민족 형성과 국가 건설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지역주의는 강대국의 개입과 이념적 분열과 같은 냉전적 질서에 의해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가장 성공적인 운동으로서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출범한 아시아-아프리카회의(Asia-African Conference)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운동은 비록 지역을 그 명칭에 걸었지만 지역협력체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와 이념적 대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제3세계의 단결과 협력을 도모한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으로 발전하였다. 그 명칭에서 “아시아”는 그 지리적 근접성이나 지역적 동질성이 아닌, “제3세계”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 개념이었다. 이 모든 운동과 기구들은 동남아시아 전체든 부분이든 상호 협력이나 통합은 고사하고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III. “상상의 [지역] 공동체” 만들기: ASEAN의 창설과 확대
동남아에서 실질적인 지역주의는 냉전적 대결이 정점을 이루었던 1960년대 후반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창설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미국의 강력한 후원 아래 출범하였지만, 동남아의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가 수까르노체제의 붕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