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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의 바울(The Paul of Acts and the Paul of the Letters)
사도행전 13-14절의 이야기는 이미 바울 서신에서 보는 것과 대조하여 누가의 바울 서술에 관한 눈에 띄는 수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바울이 사도라는 것 혹은 헌금과 관련하는 것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거의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서신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분명히 나타난다. 더욱이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바울이 설교자이며 기적행위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정보를 듣고 있지만 그가 서신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 서신의 바울은 기적사역에 대해서는 단지 드물게 언급하는 정도이며 자신의 서신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한다. 더욱이 사도행전의 바울은 서신의 바울과는 거의 닮지 않은 소리를 내는 설교를 선포한다(예, 행 14, 17장의 설교들). 브롤리(R. Brawley)가 “가장 축약된 형식으로 표현된 누가의 바울이 가진 문제는 서신의 바울이 이질적인 바울”1)이라고 불평하는 것은 이러한 요인들과 내가 언급하지 않은 몇 가지들 때문이다. 바렛(Barrett)은 사도행전의 바울을 묘사하면서, 그러한 불만을 상당히 정확하게 표현한다. “이것은 전설적인(legendary) 바울이다. 그 형용사가 결코 전적으로 허구적인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신앙으로 생략, 조정, 그리고 강조에 의해 만들어진 묘사를 기술하여 누가와 그의 동시대인들의 누군가가 후대의 세대에 보여주기 원하는 바울을 진술하기 위해 사용된 것일지라도 그렇다. 따라서 그것은 전적으로 서신의 바울과 다르며, 목회서신의 바울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양자에 매우 긴밀히 관련되는 것은 사실이다.”2) 많은 학자들이 누가는 바울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후대 세대에서 바울의 찬미자였다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사도행전에서 발견되는 바울의 초상 때문이라는 것은 아마도 정당한 말일 것이다.
우리들이 …
며 그는 직접적으로 바울의 회심/소명(3회에 걸쳐!), 그의 선교여행들, 그리고 그의 재판들을 기술한다. 만일 누가가 특정 기간 바울의 동반자였고 따라서 믿을만한 정보원들을 가졌다면 그가 만든 기록문서의 형식은 역사적 바울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접근법을 다양하게 제공했을 것이다.7)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바울에 대한 아스라한 반영(혹은 과장된 왜곡)을 갖고 있는 반면, 서신에서는 유일한 실제적인 바울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안된다는 금언(saying)에 의한 것이다(바울 자신에 대한 생각과 타인의 바울에 대한 생각이 종합적인 균형을 이루게 한다). 그러한 결론은 사례로 입증되어야 한다.
대략 말하자면, 사도행전의 바울의 초상에 관한 불만들은 두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1) 바울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들에 대한 왜곡, (2) 바울 신학의 왜곡. 전자의 불평은 보다 최근에 제기된 것들이며 후자는 먼 길을 거슬러 간다. 그러나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현대의 논의는 필하우어(P. Vielhauer)의 프로그램적 논문, “On the Pauline of Acts”8)에 의해 촉발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차례로 다룬 후, 전체의 묘사에 영향을 미치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건 누가의 생략에 대한 얼마의 논의로 끝맺을 것이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바울에 대한 사회적 묘사를 생각하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은 자들, 남자와 여자들 모두 똑같이 만날 수 있는 세계적인 사람으로 비쳐진다. 또 그는 그의 연설에서 반영되듯이 상당한 수사적 기술을 구살할 수 있는 교육받은 자일뿐만 아니라 적어도 기본적인 헬라철학과 유대교의 신념과 관례들을 자세히 알고 있는 자로 나온다. 그는 충실한 유대인이기도 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 훌륭한 로마시민, 그리고 분명한 다소 시민(초라한 도시가 아님)이기도 하다. 우리는 바울을 기적을 행하는 자이며 그의 손으로 일하는 자로 생각할 뿐 아니라 지중해의 절반인 동부지역을 두루 순회하는 자로 생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