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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유럽수학
중세유럽수학, 6세기에서 16세기까지
중세 유럽의 수학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한 후 5세기 중엽부터 11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교회가 기독교의 교리에 입각하여 지배하던 유럽의 암흑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가톨릭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의한 연구 외에 수학의 연구라고는 있을 수 없었 다. 그나마 이 암흑 시대에 수학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순교한 로마 철학자 보이티우스(Boethius ; 408?~524), 영국의 교회학자 베다(Beda ; 673~735)등이 있었다.
이후 유럽에서의 수학은 12세기 초인 중세 말엽부터 15세기 르네상스 초기에 이르러 비 로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수학은 그리스 수학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의 아라비아 수학을 기초로 하였다. 이 때 등장한 아라비아 수학은 그리스와 인도, 근대 유럽 을 이어 주는 교량 역할 이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13세기의 유럽은 한 마디로 번역의 시대였다. 유클리드의 「원론」을 비롯하여, 아르키메데스, 아폴로니오스, 알콰리즈미(Alkhwarizmi ; 780~850) 등 그리스 및 아라비아 수학자들의 서적이 에스파냐를 중심지로 하여 라틴어로 번역되어 홍수처럼 유럽에 쏟아져 나왔다.
13세기 초엽 피보나치(Fibonacci ; 1180?~1250?)는 중세 암흑기에 최초로 수학의 부흥 에 나선 인물이었다. 그는 유명한 저서 「산반서(Liber abaci)」를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산술과 초등 대수에 관한 내용으로 비록 독립적인 연구이긴 하지만, 알콰리즈미의 대수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인도-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으로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 다. 이 책에는 피보나치 수열을 비롯한 많은 문제가 실려 있는데 이것은 수 세기 동안 그 이후의 저술가들에게 수학 문제의 보물 창고 역할을 하였다.
이후 15세기에서 16세기에 …
1. 암흑시대
루어쳤고 6은 약수가 1, 2, 3인데 이들의 합이 1 + 2 + 3= 6이므로 6을 완전수 (Perfect number)라고 했다. 또한 노아의 홍수 때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노아 부부와 세아들과 세 자부를 합하여 모두 8명인데 그때부터 인간은 부족한 존개가 된 것인데 왜냐하면 8 의 약수는 1, 2, 4 이고 1+ 2+ 4= 7< 8이므로 8은 약수의 합이 부족한 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보에티우스의 수학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보에티우스 이외의 수학자로는 베다와 알비누스를 들 수 있다. 영국의 성직자 베다 (Beda 672~ 735)는 중세 초기에는 기독교인들이 자녀들을 그리스 전통으로 교육했으나 차츰 영적 개발과 영 성훈련에 중점을 두만서 그리스 수학을 멀리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리스 문명 자체가 와해되 어갔다. 게르만 민족들의 분챙과 전챙, 약탈과 방화가 도시를 페허화시켜가자 교회는 도시를 떠나 한가한 시골과 산에다 수도원을 세운다. 이제 수도원은 기독교 활동의 7, 8세기 중세의 수학자이다. 그의 저서 계산론에는 기독교 축제일을 정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현재 교회에서 기념하는 부활절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한 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즉 ??춘분 (3월 21일) 이나 춘분이후의 보름 다음에 오는 첫주일날 혹 은 보름이 주일날이면 그 다음 주일로 한다.?? 이다. 따라서 부활주일은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에 설정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일정을 결정하는 일에 관심을 쏟은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종교적인 기념일을 정하려면 해와 달의 주기와 결부하여 천체들의 운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했으므로 이는 곧 천문학과 수학의 문헌을 뒤지게 했고 고대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의 저작들을 재발견하도록 한 것이다. 신학자 알비누스(Albines 735- 804)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오성(悟性)을 예리하게 하는 문 제집의 저자인데 내용은 엉터리 수학문제라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요즘 TV 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