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구약성서와 문학비평
1.성서는 문학인가?
성서연구는 1960년대까지 거의 외길을 걸어왔다. 성서연구의 초점은 성서와 역사의 사실대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60년대 이후 성서연구는 새로운 연구방법을 성서에 적용하게 되었는데, 그 연구가 바로 문학비평이다. 하지만 성서가 문학비평의 방법론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우리는 먼저 성서가 문학인지, 아닌지 만약 문학이라면 문학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성서가 문학이라면 으레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문학이라는 분야가 다른 학문적 분야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서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요담, 나단, 예수 등)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깨닫게 할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명제적 진술보다는 비유, 풍유, 이야기와 같은 문학적인 장르를 사용하여 진리를 전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비멜렉이 세겜성읍의 왕이 되었을 때, 이를 알리고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 요담은 풍자를 사용했고, 나단 역시 다윗의 잘못(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일)을 깨닫게 할 때, 비유를 사용했고, 예수도 많은 비유들을 사용해서 사람들과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문학이라는 장르가 결코 진리를 드러내는 데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유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찾게 된다. 이 가능성은 우리가 성서를 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해석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즉 ‘문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가 문제제기 된다. 단순히 기록된 모든 것을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이고 협의의 개념을 학자의 목…
2.통시적 비평과 공시적 비평이란? (역사비평과 문학비평)3)
시적이란 말을 이해하는 첫째 방법은 역시 이 단어의 어원을 통해서 일 것이다. 문자적으로 통시적(diachronic)이란 용어는 ‘시간을 통해(그리스어 접두사 dia는 through)을 의미하고, 공시적(synchronic)이란 용어는 ‘시간과 함께’(그리스어 접두사 syn은 with)를 의미한다.4) 이 어원이 말해 주듯이 통시적 비평은 역사로 부터 그들의 의미를 이끌어 내는 것이고, 공시적 비평 방법은 역사 과정으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 그리고 스스로 말하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앞에 놓은 전선을 관찰할 때 전선의 긴 측면을 보느냐 전선의 단면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이 두 비평의 차이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유비가 있는 데 이는 주로 공시적비평가들이 통시적 비평의 한계를 지적할 때 사용한다. 공시적 비평가들은 묻는다. “성서는 창문인가, 거울인가?” “성서는 성서를 앞서는 역사적 과정을 관찰하기 위한 하나의 창인가? 아니면 그 자체에 포함된 새계를 볼 수 있게 하는 거울인가?” 물론 공시적 비평가들은 성서가 거울과 같다고 보고, 통시적 비평가들이 성서를 창문으로 본다고 비판한다.5) 어원분석과 유비의 종합을 통해 통시적 비평과 공시적 비평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통시적 비평은 텍스트(본문)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자꾸 본문이 쓰여진 삶의 자리, 본문의 근본적 자료, 본문이 현재와 같이 편집된 이유 등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문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 이에 반해 공시적 비평은 본문 이전 역사가 어떠했든지 간에 현재 해석자 앞에 놓인 본문 자체를 중요하게 다루며 그 본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
통시적 비평은 역사 비평이라고 불리고, 공시적 비평도 문학비평과 별 구분 없이 사용된다. 왜냐하면 통시적 비평은 역사 비평과 거의 같고, 공시적 비평은 문학비평보다 큰 개념이지만 문학비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6)
여기서 우리는 역사 비평방법과 문학 비평 관계를 조심스럽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문학비평은 역사비평이 발전한 후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