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히틀러의 리더쉽에 대하여
Ⅰ. 서 론
- 카리스마 리더십 히틀러 -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틀러를 가리켜 독일의 독재자라 하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의 핵심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수백만의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살인자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모두가 히틀러란 인물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일부분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판단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또한 배울 점에 대한 교훈도 얻지 못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이 연합국의 발아래 짓밟히고 뒤이은 경제 공황으로 수천만의 독일인들이 일손을 놓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히틀러의 연설은 진정으로 게르만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자신감속에서 나치의 붉은 깃발아래 독일인들을 뭉치게 했고 그의 명석함은 지지자들과 함께 제3제국을 건설하고 빈틈없이 통치해 나갔다. 물론 히틀러의 민족주의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 유럽을 피비린내 나는 수년간의 전쟁으로 내몰아 역사 앞에 커다란 범죄를 지었을 지라도 히틀러의 지도자로써의 자질은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전형적인 카리스마 리더의 대표적 인물인 히틀러를 통해 카리스마 리더십을 이해하고자 한다.
1. 히틀러의 리더십 분석
1) 히틀러의 리더십에 대한 전반적 이해
① 사회적 상황
그가 태어난 오스트라아-헝가리 제국은 절대주의 국가로서 당시 민족문제로 고심하고 있었으며 독일인 귀족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치하에서 권력을 독점하였고 관료, 군인, 대지주, 자본가, 교원, 지식인의 대부분은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세력을 확…
② 리더역할
- 지도자로써의 히틀러 -
③ 조직의 구성원
- 대중적 지지
- 조력자들
2) 이론을 통한 리더십의 전반적 이해
했고 이를 수행했다. 지도자를 지도자이게 할 수 있었던 구성원이었고 그들을 그렇게 한 것도 히틀러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독일 군대의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군대의 세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군대 본연의 힘과 자부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 대가로 군대의 독립성과 자율성, 존엄과 양심까지 히틀러는 박탈해 버렸지만 이 과정은 조금씩 단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한 예로 뛰어난 리더십의 지적인 활기와 창의력 말살시키기 위해 1920년 독일 참모대학을 폐쇄했으며 군대의 참모부서마저 없애버렸다.)
독일 내에서는 1944년 7월 20일 히틀러의 암살을 기도한 반란조직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은 극소수의 사회주의자와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히틀러보다 더 반동적이어서 구체제로의 복귀를 희망했다. 즉 독일에서 히틀러 반대세력은 나치가 멸망하는 날까지 극히 적었다.
- 조력자들
히틀러는 개인 참모를 소중히 생각했고 이들은 단순히 일을 돕는 사람이라기 보다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어린 시절 가정이나 학교에서 인간관계가 깊지 못했던 걸을 가만 하면 이들의 존재는 히틀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릴 적 히틀러의 사상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친 페추박사, 홍보선전 전문가 괴벨스, 반 나치세력 색출을 담당한 히믈러, 유명한 독일의 사상가 하이데거, 훗날 파시즘이란 사상으로 게르만 왕국 재건을 위해 동맹을 맺게 되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 히틀러와 사상과 뜻을 같이 했으며 철저한 파시스트였다.
2) 이론을 통한 리더십의 전반적 이해
- 카리스마적 리더십 -
우리는 히틀러를 변혁적인 리더십으로 보지 않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보았다. 분명 히틀러는 독일과 세계를 변화 시켰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과 그 추종자들에게 민족주의로 뭉친 미래의 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맞건 문제해결에 있어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에게 개인적 배려나 지적 자극이 없었다. 오히려 특정 인물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