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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유학사상의 자연관과 생태적 함의
고대에 출현한 4대 문명의 하나에 해당하는 중국문명은 역사적
사료에 비추어 볼 때 황하유역에서 기원전 3000년경에 본격적으
로 출현한다. 중국은 전설상으로 3황 5제를 거쳐 하나라, 은(상)
나라, 주나라로 이어지고, 이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가 마
침내 진시황에 의해 처음으로 통일을 이룩한다. 중국은 진에 의
해 세워진 통일국가 이후 한나라, 위진남북조시대, 수나라, 당나
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현대국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는 중국으로부터 많
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이 더욱 그러했는데, 오늘
날에는 중국 이외에도 한국과 일본이 옛것을 계승하여 스스로 고
유한 문화적 풍토를 조성하여 세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것을 동아시아 문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아시아 지역에 가장 많은 정신적 영향을 미친 요인은 중국에서
태동한 유학사상이다.
기원전 551년경에 태어나서 유한(儒學)의 실질적 창시자로 추
앙을 받는 공孔子)는 자신의 가르침이 및 성현의 글을 서술하
여 전하는 것이지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 아님(述而不作)을 밝힌
바 있다. 공자는 문왕과 무왕, 주공을 높이 숭상하면서, 고대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받들어 전하는 데 주력한다. 예컨대 "공자께
서 ‘시경’ 의 시 3백 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생각에 사악함
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공자는 옛것을 서술하는 과
정에서 이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설파하게 된다. 단순히 기술하
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자는 나라를 바르게 하는 사회…
야 하는 만
큼 통치자 역시 윤리적 지도자여야 한다고 보았다. "군주가 어질
면 어질지 않은 사람이 없고, 군주가 의로우면 의롭지 않은 사람
이 없으며, 군주가 바르면 바르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군주가
바르게 서면 나라가 안정된다."고 여겼다.
맹자는 경제 운영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였다.
대표적으로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토지 분배에 대해서는
공정한 정전제도를 주장했다. 우물 정(非) 자를 예로 들 수 있는
데, 가운데 토지 하나는 공적인 것이고, 나머지 여젊은 사적인 것
으로 개별 가구가 하나씩 불하받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이 제도
는 여덟 가구가 소출물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먼저 공전을 경작
하고 그리고 이어서 자신에게 불하된 사전을 경작토록 하는 것이
다. 농부들이 농사를 짓거나 자연에 다가갈 때, "농사철을 어기지
않도록 하면 곡식은 다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고, 촘촘하여
조밀한 그물을 못과 물가에서 치지 못하도록 하면 물고기가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해질 것이며, 도끼 든 사람을 적절한 때
에 맞춰서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통나무 재목은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해질 것이다. 곡식과 물고기가 다 먹을 수 없을 정도
로 풍족해지며 재목은 다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질 것이니,
이런 시책은 백성들로 하여금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이를 장
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고, 이와 같이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이를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
도정치를 펴는 정책의 시작이다. " 군자는 도를 구현하여 가르
치고, 군주는 이를 수용하여 시행하면 나라에 왕도가 펼쳐지니
세상이 태평해질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군주가 통치를 행함에
있어서 덕을 구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을 사지로 내몰 경우,
백성이 임금을 갈아 치우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역성혁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맹자가 광도정치를 촉구했지만, 현실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