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 1장 서론
3월 26일 21시 22분, 해군 1천200t급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 가운데 46명 실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해 온 민?군 합동조사단은 5월 20일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의 결과로 침몰됐다는 결론”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북한 정부는 “천안함 조사는 날조된 것이며 사건 해결의 관건은 피해 당사자인 북한이 확인하는 데에 있다”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4일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국제사회 차원의 대응 조치를 논의해 줄 것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요청한 상태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남북간의 외교 심리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으며 근거 없는 남북 전쟁설의 등장으로 인해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무장공비 31명을 침투시켜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12사태와 유경수 여사 저격사건, 연평해전 등 다양한 형태의 대남도발을 시도했다. 역사적으로 남북의 심리적, 정치적 거리는 북한의 대남도발에 의해 좌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남한도발로 인해 악화된 관계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다가도 북한의 새로운 대남도발 시도로 다시 악화되는 형태로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천안함 사건’은 이전의 대남도발과는 달리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심각한 남북관계의 악화를 유발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문헌 및 방송보도자료 및 국가별 정부의 공식 발표문 등을 조사하는 방법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대남도발 사례가 역사적으로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살펴보고 각국의 입장 및 반응을 알아보며 천안함 사건 이후의 남북관계 해결을 위한 방법을 고민해보려고 한다.
본론에 앞서 우리는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대남도발로 인정한 공식 발표한 것을 사실로써 전제함을 …
제 2장 본론
제 1절 대남도발의 정의
1. 대남도발의 정의
2. 북한의 대남도발 특징
(1) 대남전략과의 연계성
있지만 시제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조선노동당독재를 넘어서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 걸친 3대 부자의 권력세습으로 이어지는 수령 독재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은 후계체계를 구축해 오는 과정에서 대남공작부문에 대한 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1975년 6월부터 1976년 2~3월에 걸쳐 대남공작 사업전반의 집중검열과 검열결과의 총화, 또한 대남공작 부서의 조직개편 등을 통해서 대남공작분야의 김정일 직속체계를 확립해 나아갔다. 이로써 김정일은 당 조직비서, 선전비서, 대남비서를 겸임하는 등의 절대 권력을 확보했으며 대남사업 전반은 물론, 비인도적이고 반민족적인 테러행위와 각종 대남도발을 자행하는데 있어서 그 누구의 허락이나 제재가 없이도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북한은 선군정치를 표방하고 있으며 전체사회를 병영국가체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인민들은 당과 수령을 위한 총 폭탄이 될 것을 강요받으며 투쟁, 도발, 전쟁과 같은 용어에 익숙해져 있고 사회문화 전반에 군사문화가 일반화 되어 있다.
오늘도 북한의 인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으면서도 재정대비 30%에 이르는 70억 달러 이상의 과도한 군사비를 지출함으로써 세계제일의 병영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군사적 위협수단을 통해 대회협상력을 제고하고 협상의 유리한 상황조성을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북한에서는 재래식 전투력 증강과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 화학생물 무기를 개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대남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1) 대남전략과의 연계성
위와 같은 북한정권의 체제적 특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지금까지 북한이 자행한 대남도발행위는 결국 대남전술 및 전략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남도발 또한 각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남전술의 일환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는 대남전략이라는 큰 목표 아래에 있기 때문에 대남전략과 대남도발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