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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대체 레포트
論語 속의 仁에 대한 小考
1. 들어가며
사람들은 쉽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당신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언제인가부터 나는 그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사람 인(人)자 여섯이 제 좌우명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담임선생님께서 칠판에다 ‘人’자 여섯 개를 크게 쓰시고는 이것이 뜻하는 바를 아는 사람을 물으셨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옛날 얘기를 해주시면서 그 뜻을 말씀해주셨다.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있었다. 그 사람의 사람됨됨이가 너무나도 착하고 성실하고 효성이 지극해서 나랏님까지도 그것을 듣게 될 정도였다. 어느 날 나랏님이 그 선비의 집에 지나가는 여객인양 방문했다. 그리고 그 선비와 사람의 갈 길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몇 년후 나라의 과거시험이 있었는데 그 선비 역시 응시를 하게 되었고 나랏님이 직접 과제(科題)를 내었다. 그 과제가 바로 ‘人’자 여섯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 문제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지만, 그 가난한 선비는 훌륭하게 답안을 써냈다고 한다. 그 답안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나랏님의 마음에 깊이 감명을 주는 답안이었다. 그 답안의 내용은 이러했다. ‘사람아 사람아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지 사람이지.’” 9살짜리 초등학생의 마음에 이 말이 왜 그다지도 맘에 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난 그것을 내 좌우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논어 속에 나오는 아니 유교에 나오는 ‘仁’이라는 것의 핵심이 바로 위의 ‘人’자 여섯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도 ‘仁’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었는데 하물며 내가 ‘仁이란 저것이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생각이지만 공자가 말한 ‘仁’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2. 인이란 무엇인가?
먼저 한자의 ‘仁’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仁은 ‘人…
고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죽은 어떤 사람의 행동을 논어를 통해서 본다면 이것은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공자는 이렇게 원대하고 이상적인 것만이 인이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즉, 생활 속에서 그러한 마음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바로 인을 성취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바로 恕라는 것이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교회의 신부님이 교회에서 보살펴 준 은혜를 잊고 다시 교회의 물건을 도둑질해간 뒤 잡혀서 되돌아 온 장발장을 용서해준 행동은 바로 자신이 장발장에게 원하는 바를 미루어 장발장에게 깨우치게 하여 장발장을 선의 길로 인도함으로써 바로 자신의 곁에서 인을 이루는 방법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감동하게 하여, 이를 위해서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바른 길(사심이 없는 천리를 이루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인을 이루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인을 마음속에서 갈무리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자공이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라고 했을 때 공자가 미칠 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자공이 인자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음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인자가 아님은 곧 그것을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으로서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며 이는 인자로 가려는 노력으로서의 서일뿐이라고 한 것이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不仁者가 곤궁함과 즐거움에 오랫동안 처해 있지 않고 仁者는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天理로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천리를 따른다면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사심으로부터 생기는 욕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공자는 여기사 仁者와 智者를 구분하고 있다. 인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인을 자연스러운 것으로써 편안히 생각한다면 지자는 그것이 이로움을 알고 그렇게 되기위해 노력하는 자를 뜻한다 하겠다. 하지만 인자와 지자 모두 덕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