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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철학특강 report>
데리다의 해체,
그리고 우리의 `현재진행형` 해체
자크 데리다의 해체, 그것은 그 동안의 철학 일반, 즉 기존의 철학, 텍스트를 새롭게 재해석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풀어 해쳐보자면 데리다에게 있어서 서양 철학의 역사는 ‘시니피에들’의 역사였다.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여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루소, 소쉬르, 맑스, 니체, 훗설, 하이데거 등 서양철학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철학자들은 결국 기원, 이데아, 신, 자아, 존재 등으로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니피에들의 역사는 곧 언표로 표현된 의미의 역사이다. 즉 의미를 우위에 둔 해석의 역사이며, 말하기의 역사인 것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시니피에로 대표되는 해석된 텍스트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데리다를 비롯한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은 이러한 정삼각형적인 사유패턴에 반대하여 시니피앙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해체는 쉽게 이야기하면 위에서 언급한 정삼각형적인 사유에서 그 중심을 깨어 버리는 것이다. 공감이 쉽게 되는 부분이다. ‘중심을 대체하는 중심의 대체 시리즈’에 그친 기존의 철학함을, 그들의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것, 그들의 해석을 재해석 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일 것 이다.
왜 우리는 과거의 텍스트들을 재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왜 우리는 그간의 텍스트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이것은 어쩌면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진 부친살해적인 성격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다. 철학은 종교와 다르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태어나서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자…
데리다의 해체는, 혹은 당대의 프랑스 철학가들의 사유패턴은 다분히 반항적이다. 이는 니체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사유패턴의 전복, 소외된 것들의 전진과 같은 말
이 데리다가 이야기하는 해체이고, 또 다른 해체의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또한 데리다의 해체가 과연 우리에게 어느 정도 부합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90년대는 프랑스적 담론의 시대라고 할 만큼 수많은 프랑스의 철학들이 이야기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과연 그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 가이다.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묻고 싶다.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우리의 담론들 중에서 과연 우리가 그들의, 데리다의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소화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는가? 그저 프랑스, 독일, 중국과 같은 세련되고, 현학적인 이야기들을 무비판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학문적 담론이 우리의, 한국의 현실과 어느 정도 부합되었는가? 데리다로 들어가보면 과연 우리는 데리다가 이야기하는 해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데리다의 문제가 아닌 2006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데리다의 재해석된 텍스트를 해석한다. 아직도 철학적인 키를 잡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기존의 구조를, 시스템을 해체한 데리다는 아무런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데리다에게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래서 해체한 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사실 데리다에게 있어서 해체한 이후의 문제는 불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데리다는 철학을 해석함,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데리다의 해체 이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정반합의 합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이해 부족일 수 있다. 우리가 데리다를 읽음에 있어서 가장 큰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것은 전통의 파괴이며, 이성, 논리, 보편의 사고에서 보다 많은 다중심의 사회, 의식의 전환에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데리다의 해체는, 혹은 당대의 프랑스 철학가들의 사유패턴은 다분히 반항적이다. 이는 니체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사유패턴의 전복, 소외된 것들의 전진과 같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