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연극의 이해
‘미친 뇌’
(제가 레포트로 제출 하는 글들은 거의 제 개인 홈페이지에 제 마음데로 적은 글들을 약간의 검열과 적절하다고 생각된다고 생각되는 수정을 거쳐서 내는 것이기에, 좀 사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이 있을지는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며, 글을 읽으며 거만한 태도를 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뭐 어떤 평가를 받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고, 그냥 제 글을 쓰고 싶더군요, 특히 이번 연극은 강렬하게 다가오더 군요.)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 많이 쌓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남들이 나를 외면적으로 볼 때는 괜찮은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이런저런 여러 경험하고 괜찮은 학교 다니면서 곱게 자란 사람으로 느껴질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부러운 일들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왠지 오히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절제와 권위적인 태도들 그리고 오히려 나에게 힘을 주기로 약속한 것들이 나의 삶의 전개 가능성을 점점 줄여가며 나의 모험을 억압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점에서 나는 나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상황과 내가 하게 될 일들에 대해 긍정하면 서도 속으로는 꺼림칙하고, 실제로 내가 즉흥적으로 하고 싶음에 대해 생각할 때는 그것이 실제로 떠오르지만 나는 그것을 곧바로 차단하고 그 것을 보려고 하는 나는 그것을 희미하게 밖에 지나 칠 수 없는 것이다. 아직은 ‘나’라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말하자면 내 가죽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마치 작아지게 되어서 힘을 못 쓰는 파리가 한 마리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들고 내용도 상당히 역겨운 글을 쓰는데, 이는 주로 그 희…
에게 말해 주었다. 아무래도 곰은 무서운 법, 나는 그 자리에 그 백을 꼭 껴안고 앉아 있었고, 갑자기 무슨 단속단원 같은 느낌의 바라클라바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그 상인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울고 있었지만, 결국 그 가방을 가지고 극장 밖으로 나지 않았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 다시 보이는 세계로 돌아온 상태에서 생각해 봤을 때 숱한 원망을 샀을 것이다. 파리는 유연해서 그 모든 비난과 구타를 요리조리 잘 피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극이 진행 되는 동안 계속해서 상인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였고, 상인은 역시 나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만약 상인이 그 장면 이후로 안 나왔다면 나는 더 이상 그 극은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다른 배우들의 행동에서 어느 정도의 동질감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 상인이야 말로 내가 진정 보고 싶은 것들을 보여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물건들의 용도의 엑스타시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사라지는 순간 고분고분한 배우중 하나로 다시 돌아갔다.
얼마 전에 내가 진정 소중히 여기는 선배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선배는 어찌 해서 나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나의 일기장을 보면 위에서 설명한 분열적이고 계속된 모순 속에 이어지는 글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파사칼리아라고 부른다. 파사칼리아는 처음에는 베이스 선율과 같은 주제가 제시되고, 주제가 변화하며 베이스 선율에서 진행하는 동안 계속하여 상성부 선율은 베이스 선율에 대위적인 자유로운 변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마치 조종사들이 비행착각을 하듯 아니면 이런 자유로움에 못이기 듯 마지막에는 상성부로 기초 선율이 옮겨간다. 나는 별로 능숙한 작곡가는 아닌 것이다.
선배는 이러한 글을 해석하려고 하던 것이다. 나에게 특정 단어의 의미를 묻고 자살 의향을 묻고, 솔직히 난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나름 감명 받기는 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