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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구니 활동의 역사적 고찰
I. 머리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자 여성들은 출가하여 비구니 승가를 형성하였다. 같은 시기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서 비구니는 수계제도가 거의 사문화(死文化)되고 있는 상황임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를 수용하면서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비구니계를 주어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비구니 승가는 현재 한국불교에서도 그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 실례(實例)로 조계종단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 종단 소속 스님들 가운데 그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가 사미니를 포함한 비구니 스님이다. 이러한 성비(性比)만 보더라도 한국불교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즉 교단의 발전에 기여하는 원동력의 절반 이상이 비구니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비구니는 수행자이면서 여성이라는 특수신분을 갖는다. 따라서 불교포교에 있어서도 불모지나 다름없는 개척 분야가 바로 비구니의 몫으로 남아있다. 실버 계층을 상대로 하는 포교 이외에도 유아교육, 장애자 교육, 결손가정 자녀들의 지도문제, 그리고 특수업종 종사자들의 교화, 농어촌 부녀자 포교, 도심 빈민 근로자 가족들의 상담 등 낱낱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산적한 문제들이 비구니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불교라는 명제 속에서 그간 비구니의 활동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불교수용기인 삼국시대로부터 불교로서 꽃을 피운 고려시대 그리고 숭유억불정책 속에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근?현대의 비구니들의 활약상을 찾아서 살펴본 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한국불교의 보루인 비구니의 역할과 그 위상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II. 삼국시대 비구니의 활약상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하여 날로 번창해가던 한국 불교의 전통이 조선 왕조에 접어들…
III. 고려시대 비구니의 활약상
백제의 경우 위덕왕 24년(577)에 삼장(三藏)과 선사(禪師), 비구니, 불공(佛工), 사장(寺匠) 등이 일본에 파견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동왕(同王) 35년(588)에는 고구려 승 혜편(惠便)으로부터 출가 수계한 일본 최초의 비구니 3명이 백제에 들어와서 3년간 율학을 수학하였다는 기록이7) 있으며, 의자왕 15년에는 법명(法明)이라는 비구니가 일본에 건너가 ??유마경(維摩經)??을 독송하여 병자들을 고쳤다는 기록 등8)으로 보아 비구니가 불교수용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9)에 의하면 지통원년(持統元年, 687) 신라의 승니(僧尼)와 남녀(男女) 백성 22명이 무장국(武藏國)에 안주하게 되었다고 하며, 또한 ??원형석서(元亨釋書)??10)에 의하면 8세기 중엽(天平元年, 757) 무장야(武藏野)에 처음 세운 신라군(新羅郡, 都)에서 신라로부터 건너온 사문(沙門)과 비구니가 활동했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 자료들을 통해서 살펴볼 때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비구니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나가서 활동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에 가서 활동한 사례로서 현원(現願)이라는 비구니는 일본의 고시가집(古詩歌集)인 ??만엽집(万葉集)??11)에도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의 비구니 가운데는 왕비와 귀족뿐만 아니라, 이들을 따르던 궁녀나 시종, 평민여성까지도 출가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II. 고려시대 비구니의 활약상
삼국의 뒤를 이은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하고, 숭불정책을 펼치기에 이른다. 즉 고려시대의 불교는 호국불교적 성격을 띠면서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겠지만 사찰과 승려들의 숫자도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귀족과 평민은 물론 왕족들도 출가하여12) 명승(名僧), 대덕(大德)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사회적으로는 면세(免稅), 면역(免役)의 특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