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15-16세기)의 기록관리 전통에 대한 연구
1. 서 론
1991년 이탈리아의 문서관리전문가, 엘리오 로돌리니(Elio Lodolini)는 자신의 한 저술에서 11-15세기를 중세문서관리의 핵심적인 기간으로 보는 견해에 동의하였다1). 또한 그는 르네상스 시대, 즉 15세기의 문서관리를 <<좁은 의미에서 중세 문서관리 전통의 마지막 단계>>로 제한한 조르지오 첸체티(Giorgio Cencetti)의 주장을 수용하면서2), 그 사례로 중세 문서관리에 관한 이론들이 기록보존소의 문서들에 대한 공신력(fides publica)을 보장하는 것에 편중되어 잇음을 지적하였다3).
첸체티와 로돌리니가 르네상스의 문서관리 특징들을 중세 문서관리 전통의 일부로 간주하고 그 기간을 15세기로 제한한 근거는 이후 16세기의 ‘역사기술을 위한 기록물의 학술적 가치’4)와 특히 <<피렌체 자치도시의 Riformagioni, 즉 일명 자치정부 기록보존소에 적용된 ‘시리즈별’ (문서)정리방식이 -고문서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16세기 역사기술의 새로운 경향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5)이 15세기의 문서관리와는 단절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중세와 근대의 단절은 전자의 문서관리체제가 주로 문서들의 법적, 행정적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논리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르네상스기간을 단순히 중세의 마지막 단계로 정의한다면(15세기), 문서들, 즉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포함하는 문예부흥의 역사적 의미를 문화와 학술적 관심이 제외된, 법 및 행정분야의 흔적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반면, 근대의 문서관리전통은 어떠한 변화와 과정을 통해서 성립되었으며 이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가능한가?
2. 중세 문서관리 전통과 공신력
라 탄력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15세기를 문서관리의 르네상스로 그리고 이를 중세의 마지막 기간으로 정의하는 기존의 주장을 획일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입장에서 재고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론의 여지가 있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2. 중세 문서관리 전통과 공신력
중세의 기록보존소(archivum, 또는 기록물)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의 광범위한 의미와는 다르게, <<공문서들이 보관되는 장소(locus in quo acta publica asservantur)>>로 국한되었다. 그리고 이 장소는 <<공신력을 부여하는(ut fidem faciant)>> 기능이 수행되는 공간을 의미하였다.
당시에 문서들, 특히 공문서들에 공신력을 보장하는 기능은 ‘기록보존소에 대한 권리(jus archivi, 또는 jus archivale)’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이 권리는 군주, 궁극적으로는 황제, 교황 그리고 이들로부터 권리를 제공받은 자만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우, 공신력을 제공하는 기능은 군주가 자신의 인장으로 진위성을 보장하는 알프스이북의 문서화전통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반도에서는 문서를 작성하고 이에 공신력을 부여하는 기능을 공증인이 수행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19세기의 교황청 문서에서도 발견된다7).
이처럼 중세 이탈리아 자치도시들의 기록보존소는 공증인의 문서작성과 공증기능에 기초하여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자치도시들이 실제적인 조직으로 성립된 배경과 자치도시들의 여러 권력기구들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공신력(publica fides)을 부여하는 공증인의 기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8).
이탈리아의 자치도시들이 “세상에 대한 황제의 권력을 자신의 법적 영역 내에서 동일하게 행사하는 도시”로 성장한 것은 jus archivi를 행사하는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프란체스코 칼라소(Francesco Calasso)의 연구에 의하면, 이 새로운 원칙은 13세기에 볼로냐 학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