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융 심리학의 `영` 개념에 대한 목회상담적 고찰
Ⅰ. 서론
A. 연구의 의의와 목적
인간은 물질적인 욕구만으로 살 수 없으며 또한 영적인 것만으로 도 살 수 없다. 육과 영의 적절한 상호작용은 성숙한 인간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육과 영의 조화가 깨어져 있어서 너무 물질적이거나 너무 정신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개신교 목사들이나 카톨릭 사제들이 담당하고 있는 영혼의 치유는 기독교의 신앙고백1)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종교의 영향 하에 있다.2) 반면에 정신분석학과 기타의 심리학적 접근은 영혼의 치유가 의료적 행위이며 심리학적인 기술로 보고 있으며, 꾸준히 이 두 분야의 대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이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구에서는 기독교 영성이라는 주제가 교회와 신학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 과거에 경건(piety), 신심(devotion), 넓게 신앙이라고 하여 신학과 구별시키기도 했던 영성을 신학과 켤코 대립시키거나 분리하지 않고 있다.3) 이러한 흐름은 영성에 대한 탐구가 실천적인 영성가들이 주장해온 주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학일반에서 접근해야만 하는 새로운 조류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을 영적인 길로 인도해 줄 좋은 영성 지도자들과 안내서를 찾고 있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 속에서 절대적인 교리나 진리보다는 경험을 통한 확실성에 이르고자하는 현대인들의 정서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새로운 21세기에 상담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담학은 영혼과 물질(육체)의 조화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갈증을 채워 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천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와 의식의 통합, 자아와 초자아 그리고 원욕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상담인 것이다.
목회…
라고 부른 것은 신학과 심리학의 대화의 창구를 열 수 있는 중요한 시각의 전환을 의미한다.
엄밀한 학문적 태도를 취할 때에 심리학자는 개개의 종교가 내걸고 있는 자기만이 유일하고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요구를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의 눈은 종교문제의 인간적인 측면에 눈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사는 근원적인 종교체험이며, 개개의 신경이 무엇으로부터 그것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의사이며 신경장애 및 정신장애에 관한 전문의이기 때문에, 나의 출발점은 어떤 한 종파의 주장이 아니고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 , 즉 자기 자신 및 자신의 일반 상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각종의 요인을 고려에 넣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인간의 심리에 관심을 갖습니다.8)
융은 자신이 기독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9) 그러나 그의 사상은 기독교 신학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융은 일생동안 개인의 영적인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의 심리학은 종교적인 질문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융은 그의 환자들이 그들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나 목적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의 외면적인 상황이 그들에게 깊은 삶의 의미를 제공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혼의 의사이기를 원했던 융은 동?서양의 여러 종교현상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 종교가 삶의 의미를 제공하고 병든 인간의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영혼에는 본래 종교적인 기능이 있다. … 그러나 만일 지고한 가치가 영혼에 내재해 있다는 경험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으면 … 나는 심리학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10)는 뜻에서 정신치료와 종교는 같은 지향점 ‘영혼’을 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융이 경험론적이고 현상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던 자기와 영에 대한 이해를 신학적 측면에서, 보다 세분화하면 목회상담적 측면에서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