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오순절 운동의 배경과 역사적 고찰
Ⅰ. 서론
개신교 신학 가운데 여러 교단의 각각의 특성과 장단점들이 있다. 그 중에 필자는 오순절 신학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오순절 신학의 가장 큰 장점은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성령의 사역에 대한 열린 마음일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란 체험이라는 한계를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한한 성령의 역사를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무조건 부인하기보다는 더 깊은 고찰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신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성경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져야할 작업이다. 뿐만 아니라 기본은 잊어버린 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튼튼한 기초 위에 오순절 신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더욱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개신교가 성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이 있다. 필자도 이러한 지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6?25전란, 그리고 가난과 싸워온 개신교는 양적인 성장에 치중한 경향이 강하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하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할 그리스도인들이(창 1:28) 오히려 불신자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 현실을 애써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성향인 거룩에 대해서 오순절 신앙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이를 통하여 오순절 신앙이 더 확고히 서서 하나님의 사역에 더 원활히 사용되기 위해서 회복되어야할 성결의 당위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지적한 문제를 웨슬리의 생애와 그의 사상을 시작으로 19세기 미국의 여러 가지 부흥운동을 오순절 운동의 태동과 연관지어 살펴보는 한편, 20세기 초에 있…
Ⅱ. 오순절 운동의 배경
1. 웨슬리의 생애
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이었다.
그리고 나서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리는 1738년 4월 24일에 유난히 무관심하고 냉랭한 마음으로 런던의 올더스게잇(Aldersgate)가에서 있었던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7) 그 모임에서 그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게 되었고 그가 모르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당시를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진 것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다는 확신이 주어졌다”라고 고백하고 있다.8) 이것을 “웨슬리의 회심의 체험”이라고 하는데 이 당시에 웨슬리의 성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 후 성결운동가의 일부가 주장하듯이 1739년 1월 1일에 웨슬리의 성화 체험으로 인정되는 사건이 있었다. 웨슬리는 그 날의 일기에 “새벽 3시경, 우리가 함께 모여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강력하게 임재하여 많은 이들이 넘치는 기쁨으로 소리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우리들은 성령께서 임하였을 때 겪었던 그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부터 정신을 차린 후,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9) 이러한 웨슬리의 삶이 감리교 신학의 중심에 성결을 놓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2. 미국의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18세기 미국의 종교 생활에서 가장 광범위한 변혁 운동은 대각성 운동이었다. 이것은 이전의 기독교 전파 방식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합리주의와 문화적 혼란이 확산될 때 일어났다. 그래서 기독교의 삶에 큰 자극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신앙의 시작 내지 입문에 대한 개념에 큰 전환을 일으켰다. 이런 대각성 운동이 있기 전에 미국의 영적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건국 초기의 경제적 불황과 정치적 혼란, 서부개척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한 곳에 있지 않고 계속 주거지를 옮겨다님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