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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초復其初의 의미에 대한 일 고찰
유학儒學의 공부 목적은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復其初)이다. 유학에서 복기초 공부의 핵심은 욕심을 줄이는 것이고,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와 부동심不動心이다. 그렇지만 욕심을 줄이는 것으로의 복기초는 불완전하다. 복기초復其初는 본래 노장老莊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장의 공부를 통해 완성된다. 노장에서 복기초의 핵심적인 내용은 ‘내어 맡김’이다. 내어 맡김은 ‘나라는 생각을 버림(無我)’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무아에서 유학의 복기초와 노장의 복기초가 만날 수 있다.
핵심 단어: 복기초, 적자지심, 내어 맡김, 무아, 자득
Ⅰ. 유학儒學의 복기초復其初
주자는 사서四書에 주석을 붙이는 일에 평생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주자 이후 사서는 유학 공부에 있어 오경에 앞서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서 중에서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논어論語]이며, 논어 첫 구절이 바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悅乎’이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주자는 학學이란 본받는다(效)는 뜻이며 그 본받음의 목적은 그 시초를 회복함(復其初)라고 했다.1) 그 시초란 무엇인가? 그리고 배움의 목적이 왜 그 시초를 회복하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이 일어날 만도 한데 과문한 탓으로 아직 그에 대한 글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시초는 무엇일까? 그 시초는 물론 인간이 태어난 직후의 어린아이 때를 말한다. 즉 배움의 목적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물론 맹자의 적자지심赤子之心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맹자는 대인大人이란 적자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라고 했는데2) 그 시초로 돌아가야 함은 바로 이러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 이러한 당연한 결론 때문에 복기초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맹자의 적자설은 곧 성선설과 같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 오직 순선한 마음…
어 성장하면서 생각하고 헤아리는 능력이 발달하고, 이러한 능력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데서 이차적인 욕망이 생긴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고요한 것이 천성이고 외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이 욕망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인식이 외물에 감응하면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스스로의 안에서 절제되지 못하고 인식이 외물에 끌려 다녀 스스로 반성할 수 없을 때 천성이 없어진다고 하였다.9) 이를‘물화物化’라고 한다. 물화란 외물이 사람에 감촉하는 것이 다함이 없고 사람의 호오好惡에 절제가 없을 때 외물이 들어와 사람이 그 외물로 변화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물화된 인간은 천성을 잃고 끝없이 사욕에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외물에 감응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적자赤子의 마음도 필연적으로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배움의 목적이 다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성장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행하는(問 思 辨 行) 배움의 모든 활동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맹자나 주자는 과연 어린아이의 마음이 어떻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의 어린아이 시절을 기억하기는 했을까? 볼테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를 회상하여 부모가 사교행사에만 나가는 바람에 자신은 불성실한 유모에게만 맡겨져 부모가 돌아오기 직전까지 하루 종일 똥오줌 속에서 뒹굴었다는 불쾌한 기억을 토로하였지만10) 주자나 맹자는 자신의 어린아이 시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보고 방긋 웃는 미소를 보고 그 천진스러운 상태를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로 설정했을지 모른다.
유학에서 최고의 성인으로 인정받는 공자는 자신의 최종 발달 단계를 자신이 욕망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상태(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하였다. 이것은 복기초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배움의 목적이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