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내가 이 책을 받고 처음 느낀 것은 그 바쁜 홍기빈 씨가 왜 이 책을 썼을까 였다. 저자인 홍기빈 씨는 책 전체에서 그리고 특히 ‘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박학다식하고 논쟁적이며 의욕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주류경제학의 기본적인 과제---자원이 희소한 상황에서 극대만족을 위해서는 자원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를 거부하려고 한다는 것과,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극복하는 경제학의 ‘새로운’ 파라다임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2천 3백년 전의 철학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이 아테네시대에는 어떤 의미를 가졌던가로부터 시작해, 왜 그 뒤 ‘공동체 안의 시민’이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로 대체되었는가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들’(케네, 스미스, 리스트, 마르크스, 베블렌, 케인스 등)이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의 혜안을 다시 살리려고 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얻은 두 개의 통찰력은, 첫째 ‘돈 벌이 기술’이 ‘필요한 물자를 획득하는 기술’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둘째는 ‘자급자족적인 가정경제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 받음으로써 공동체가 튼튼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술은 매우 재미있고 쉬운 이야기체로 되어 있지만 그가 노리는 것은 훨씬 거대하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실현하려면 지금의 자본주의체제를 타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첫째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노예사회는 지금의 자본주의사회와는 매우 다른데, 노예사회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것이 지금 그렇게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 많은 사람이 “성경”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
다”(76쪽)고 충고하고, 끝에 가서는 “이러한 질문(들)과 진지하게 부딪칠 때에만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인생관과 가치관을 얻을 수 있다”(164쪽)고 말하면서 “모든 수동적 패배주의, 허무주의, 냉소주의를 버릴 때도 되었다”(165쪽)고 결론 짓는다. 한 가지 예로 그는 우리나라의 ‘수출주도형 정치경제’를 비판하면서 그것이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과, 그것이 희생시킨 온갖 가치를 이제는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긍이 가는 대목이지만, 이 주장을 구체화시켜 남들을 설득시키는 과제는 그렇게 쉽지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규모는 작지만 매우 깊은 철학적인 논의를 알기 쉽게 제기하고 있으며, 또한 저자의 박학다식과 현실에 대한 열정이 책 이곳 저곳에 스며있어 두 번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