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의 개요와 의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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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평문을 준비하기 위해 논평자는 세 개의 노정기(路程記)를 읽었습니다. 하나는 성철스님의 노정기(“백일법문” 상권 제 1 장)이고 다른 하나는 원택스님의 노정기(‘성철스님의 생애와 사상’)이며, 마지막 것은 발표자의 노정기이다. 물론 성철스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노정기만 읽은 것은 분명 헛수고일 뿐입니다. 하물며 노정기만 읽고 벌이는 갑록을박이야 더더욱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평문을 쓰는 이유는, 부질없는 짓을 시킨 사람도, 아무 생각 없이 헛수고만 하는 사람도, 모두 하근기의 중생일 따름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철스님의 논지를 벗어나서 본분(本分)이 아닌 분수(分殊)의 측면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인 이유에서 ‘금강산’에 갈 수 없는 사람이나 ‘절대무한’에 관심이 절실하지 않아서 다만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한수 얻어 듣는 것으로 족한 사람 등 수많은 분수(分殊)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노정기 그 자체를 둘러싼 갑론을박조차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갑론을박을 통하여 보다 정확한 노정기를 만드는 것은, 노정기의 방향이 잘못되어 분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방황하는 수고를, 덜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평문이 보다 정확한 노정기를 만들어가는 도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밝고 지나갈 수 있는 하나의 징검다리라도 된다면 이 글의 사명은 완수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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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노정기에 나타난 지도가 각기 다르다는데서 논의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물론 성철스님의 지도가 제일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원택스님의 지도는 (성철스님의 지도의) 일종의 모사품에 해당되었고, 마지막 지도는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깊게 개입되어 탄생한 지도였다. 해서 그리고 논평의 대상이 마지막 지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마지막 지도의 다름에 대해서만 논의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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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생략한다. 제 5 장은 (성철스님의 지도의) 일종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새롭게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제 6장은 마지막 지도에서 특히 강조된 부분이다. 성철스님의 지도에 나타난 제 2 장부터 제 7 장까지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제 8장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작자의 방향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 이유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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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의 고유한 주장(argument)은 발표문의 서론, 제 7 장, 제 8장, 그리고 제 9 장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논평자는 몇몇 부분에서 발표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서론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제 7 장을 보자. 발표자의 첫 테제가 ‘백일법문은 1960년대 불교계를 지배했던 의제의 전환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논평자의 생각을 거칠게 표현하면 이렇다: 불교사상에서 정화란 계율의 확립을 통한 청정성의 회복을 의미하며, 한국불교의 정화운동의 본질 역시도 조선불교의 평민화, 일제의
백일법문 재가논강 <<백일법문의 역사적 의의>> 지정토론 자료
왜색화, 근대화시기의 세속화에 대한 반동(counter-movement)으로 일어난 일종의 선불교 정체성 회복운동이었다. 그렇다면 “백일법문”은 한국불교 근현대사의 의제를 전환하는 저서가 아니라 상징하는 저서이다. 또한 제 2 절과 제 3 절의 대의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제 4 절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논평자가 보기에, 60년대 말과 그 이후 한국불교 조계종 내부의 갈등은 수행자들이 불교적 세계관, 즉 중도의 이치를 몰라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며, “백일법문”이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설해진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 해결에 실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제 8 장과 제 9 장은 발표자의 주관적 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