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1. 시대적 상황과 개요
2. 내용
3. 인식
박제가의 ‘북학의와 그 사상은 북학파 실학사상의 결정체요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북학파는 비슷한 시기에 주로 서울 근교의 전원에서 생활했던 남인 출신의 실학자들 (경세치용학파 또는 성호학파)과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수백년 봉건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른바 ‘실학을 주창하고 사회개혁론을 제기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학문하는 방법과 사회개혁의 지향에서 차이가 있었다.
남인 실학자들이 전통적 유교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새로운 사상 형성의 중요한 통로로 삼았음에 비해, 북학파는 유교 경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경전에 주석을 다는 것과 같은 지루한 작업을 기피하고 소설이나 기행문 등의 문학작품을 사상 표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박지원이 소설체 문장을 유포시켰다고 하여 국왕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경향성의 연장이었으며, 그런 만큼 이들은 사상 내용에서도 좀 더 혁신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인 실학자들이 토지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제도의 개혁에 치중했던 반면, 북학파는 낡은 생산수단의 개량을 통해 생산력을 제고시킴으로써 사회문화를 일신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것은 남인들이 대체로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어 그것을 만회하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북학파는 비록 당사자들이 직접 권력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집권 노릇을 붕당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것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이들의 서울 생활 역시 이들로 하여금 낡은 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차이에 민감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본문/내용
북학의
박제가 지음
1. 시대적 상황과 개요
‘북학의’는 18세기의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의 저작이다. 책의 제목은 ‘북쪽 [중국]으로부터 배울 것을 논함’이라는 뜻인데, 이 말은 ‘맹자’에서 ‘진량’이라는 남방 사람들이 북쪽인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문화를 배웠다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박제가를 포함하여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을 북학파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박제가는 자를 차수 호를 초정이라 하였다. 그는 우부승지를 지낸 박평의 서자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부터 시 짓기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 재주를 발휘하였고 박지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울의 많은 지식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박제가는 젊은 날을 서자라는 신분으로 말미암아 울분을 머금고 살아야 했다. 다행히 국왕 정조의 배려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 동료들과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어 펼 수 있었다. 그리고 네 차례 (1778년, 1790년 5월. 10월, 1801년)에나 걸친 북경 여행을 통해 중국의 발달한 문물을 자세히 목격하고 중국인 …
의 이러한 사상적 경향을 전형적으로 드러내 보인 인물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대부준의 남인 실학자들과는 다르게 성리설에 대한 언급을 전혀 남기지 않고 있다. 성리설은 유학사상을 중세적 세계관으로 개조한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일반이론으로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너 나 할 것 엇이 관심을 기울였다. 실학이란 이 성리설을 공리공론이라 하여 이에 반발하면서 출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거에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남인 실학자들은 물론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까지도 약간의 성리설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박제가가 성리설에 대한 저서를 전혀 남기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것임에 틀림없으며, 그런 만큼 그는 전통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다른 누구 못지 않게 철저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학의’는 이러한 박제가의 현실적 사고로 다듬어진 개혁론이다. 그는 “재물은 샘과 같은 것으로서 퍼내면 다시 차지만 버려두면 말라버린다”고 하여 소비와 유통이 생산을 촉진한다고 천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의 전통적 견해와는 정반대로 사.농.공.상 가운데 상을 가장 중시하고 수레와 배 등 유통에 필요한 도구의 개발과 개량을 소리높여 외쳤다. 그리고 민간에 필요한 온갖 생활동구의 생산은 사치를 부취기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고 하여 이러한 것들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 점이 그의 개혁론, 나아가 북학판의 개혁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역사/지리학]북학의 - 조선의 근대를 꿈꾼 사상가 박제가의 개혁 개방론(참 우리고전 5) 박제가 지음 / 안대회 옮김 | 돌베개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