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무정부상태와 다름없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때로는 역사에 의존하여 해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는 잊혀지거나 그 중요성이 상실된 체 하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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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으로만 남겨질 경우가 많다.「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는 그러한 잊혀진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미한 사건으로 치부되어온 러·일 전쟁을 재조명함으로써 유럽의 힘의 균형과 동북아 체제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당시 조선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는지에 대해 당시 국제관계학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원인을 알려주고 있다. 즉 조선 문제에 대해 비중 있게 취급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국제체제적 맥락이나 동북아 국제체제의 흐름을 조망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그 상황의 조선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본문/내용
<서평>
러일전쟁의 숨겨진 역사적 비밀을 찾아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강성학 교수님 著>를 읽고
국제 관계 41기 김 영 희
1. 서 론
지암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의 말처럼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는 것이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역사는 인간이 창조했다는 것도 분명한 진리이다.1) 그렇다면 과연 인간들이 만드는 역사를 신이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학부 때 정치 외교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배웠던 정치학 역사와 이론들은 피상적으로 느껴졌는데 대학원에서 듣게 된 국제정치이론 강의는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 덕분에 역사적인 사건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선명하게 때로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와서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투쟁해 온 인류에 대해서 연민의 감정까지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졌는데, 첫 번째는 왜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이고, 두 번째는 도대체 역사적으로 미약한 사건으로 치부되어온 러일전쟁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 가였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책에서 몇 가지 해답의 힌트를 찾았다. 만일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면 …
쇄국정책9)을 유지함으로써 고립된 상태였고, 유럽 국가들과 동아시아의 접촉은 단순한 정치, 경제, 군사적 대립이 아니라 문명 간의 충돌로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아편전쟁10)으로 인하여 중국은 1842년 굴욕적인 난징조약11)을 맺으면서 개항을 해야만 했고, 미국 전함들의 에도만 출현으로 인하여 일본은 최후통첩과 같은 상황에서 개항을 하였다. 하지만 중국인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곧 서양 국제체제의 일원으로 자처하면서 그들의 제국주의 정책에 편승하여 마키아벨리적 모방정책은 결국 일본을 마키아벨리적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한편 조선은 전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나라를 진정한 유교사상의 중심지가운데 하나로 보고 인간의 미덕을 추구하는 플라톤식 국가였다.12) 조선은 중국처럼 균형을 잡으려는 정책도 일본에 편승하는 정책도 일관성 있고 강력하게 추구하지 못하였다. 조선인들은 중국과의 관계이외에는 어떤 다른 외국과의 관계도 원치 않았다. 은둔의 왕국이었던 것이다.13) 교수님은 이를 “마키아벨리의 국제정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플라톤의 섬”이라고 표현하였다.14) 다시 말하면 조선은 유교사상에 따라 플라톤식의 도덕적인 대응을 하였고, 일본은 마키아벨리식의 현실적인 대응을 했다.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일본은 서양의 제국주의에 현실적인 대응을 하여 제국주의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과 일본이 당시 역사적 상황에 대처했던 각기 다른 모습을 보면서 국제정치에서 강대국도 그렇지만 특히 약소국은 오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런 사실은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고대 시실리아 침공에 패배한 아테네, 현대에 월남전과 이라크 전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미국을 강대국의 오만함이 불러온 패배의 예로 볼 수 있다. 반면, 고대 멜로스 국가처럼 자신의 분수를 모른 채 아테네에 대적했다가 나라자체가 사라져버린 약소국의 오만함의 비극도 역사는 여실히 보여준다. 러일전쟁 직후 조선의 경우가 오만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