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Kant의 윤리설
1. 서론 : 형식주의 윤리학으로서의 칸트의 윤리학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면 맨 처음 소크라테스와 그의 반대론자들이 `정의란 무엇인가?` `왜 사람이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소크라테스와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부정의하게 살면서 남들에게는 정의롭게 보이도록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고 주장을 한다. 여기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관계없이 실제로 정의롭게 사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사실을 `이데아`론으로 요약될 수 있는 그의 이상 국가론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내용이 바로 유명한 "국가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해서 다른 많은 윤리학자들은 어떻게 대답을 해왔을까? 도대체 무엇이 `정의`며 무엇이 `선`인가? 도대체 인간이 선하게, 정의롭게 살아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중에 하나는 행동의 결과가 많은 사람을 만족시켜주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는 그 행동은 선이라는 즉, 한 행동의 선함 여부는 그 행동의 결과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도 선하게 사는 것이 결국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보통 목적론적 윤리설이라고 부르고 이 윤리설의 대표적인 주장이 인류 역사상 가장 넓게 영향을 미친 공리주의이다. 또 다른 하나의 견해는 한 행동의 옳고 그름은 그 행동의 결과에 관계없이 일정한 규칙을 지켰는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사람이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도 그 행동의 결과가 가져올 이익이나 손해에 관계없이 그렇게 사는 것이 옳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의무론적 윤리설, 혹은 윤리적 형식주의라 부르고 그러한 규칙을 직관에 의해 알 수 있다고 하여 직관주의 혹은 직각주의라고 부른다. 이 의무론적 윤리설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칸트다.
2. 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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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언명법
칙에 비추어서 평가되는 것이지 법칙이 결과 때문에 복종되어서는 안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천국이나 지옥은 도덕적인 동기를 유발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며 신에 의해 지옥에 보내어질까 두려워서 악해을 삼가는 것은 도덕적 인격으로 행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 기계와 같이 행동규범을 합법칙적으로 준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천국에의 약속이나 지옥에의 위협은 사람을 도덕적 인격으로부터 동물과 같이 도덕과 무관한 존재로 격하시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제된 행위도 도덕적 행위가 아니며 도덕 외적이거나 도덕과 무관한 행위이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외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도덕성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고 도덕성에 부합되기만 하는 행위는 도덕적 의의를 갖지 못한다.
3. 정언명법
선의지에 대한 칸트의 개념에서 분명한 것은 옳은 행동의 표준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표준은 어떤 결과를 산출하는 그 행동의 유용성이 될 수는 없다. 다른 유일한 가능성은 행동이 규칙이나 원리에 일치하는 것을 표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 규칙이 타당한 도덕 규칙이 되려면 즉, 도덕적 의무로서 모든 인류에게 구속력을 가지려면 어떤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가? 여기에서 칸트는 어떤 특정한 경험에서 유출된 몇 가지의 규칙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규칙들은 개인의 상황이 변하거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자 했고, 유사한 상황에 있는 모든 이에 의해 행동화되었을 때 누구나에 의해서도 일관성 있게 실천되기를 바랄 수 있는 궁극적이고 최고의 원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이를 `정언명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한 사람이 어떤 행위를 자신의 도덕적 의물 받아들였을 때 그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원리이다. 이는 "만일 이것을 원하거든 이렇게 하라"는 식의 가언명법과는 대조되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칸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