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목차
<찬성> -
<반대> -
<각국의 안락사 현황>
<미국-오리건주> -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주> -
<독일> -
<스위스> -
<프랑스> -
<네덜란드> -
1. 의사만의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2.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환자만이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3. 환자의 결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하고 문서로 증명될 수 있어야 하며 확인 시에는 재다짐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4. 의사는 다른 독립된 의사와 상담해야만 한다.
5. 환자가 안락사를 결정하도록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된다.
6. 안락사가 고려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참을 수 없는 통증이나 호전될 가망이 없는 고통을 받고 있어야만 한다.
7.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거나 고통을 경감시킬 아무런 방법이 없다.
<일본> -
<한국> -
안락사 허용에 대하여
과학기술의 발달과 의료기술의 혁신에 따라 삶과 죽음이 신의 의지로부터 개인적 결단의 문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경향에서 비롯된 안락사 문제는 확실히 정립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생명존중이라는 가치에는 일치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여러 종교들의 입장과 각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윤리적 관습이나 환경 등의 영향,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 등 안락사문제는 여러 곳에서 다르게 적용되고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97년 1월 9일자 모일간지에 실린 기사이다.
미국 대법원은 8일 안락사에 관한 심리를 갖고 찬 반 양측의 주장을 들었으나 상당수의 대법관들이 이른바 「죽을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인정하는데 대해 일단 회의를 표명했다.
오는 7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열린 심리에서 안락사를…
<찬성>
죽어 가는가, 아니면 영원하고 평안한 수면을 선택하는가.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돼버린 사람, 기계장치에 의지해 심장만 뛰고 있을 뿐 다시 살아날 가망은 아예 없는 사람, 현대의학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불치병으로 사망선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 살아 있다고 한들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기만 할 뿐 죽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사람들에게 고통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회복의 기약도 없이 정신적 고통과 병원비 부담에 시달린다. 죽지도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유지되는 생명에도 과연 존엄성은 있는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가. 이들에게 첨단의학은 억지로 삶을 연장시키는 잔인한 행위일 뿐이다. 이들에게는 안락사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존귀하다. 그렇다고 자신과 주변에 고통만 안겨주는 「의미 없는 목숨의 연장」이 과연 바람직한가. 안락사가 법으로 보장된다면 다른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보너스가 따른다. 이식할 장기가 없어 고통 속에서 삶을 연장해 가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절망」을「환희」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안락사는 새로운 삶이란 값진 의미를 갖는다.
동물의 권리를 제창했던 철학자 피터 싱어는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며」(세인트 마틴스 프레스 간행)에서 『인간생명은 신성한 것이라는 전통윤리학의 전제는 죽음을 눈앞에 둔 치료현장에서는 무용한 것이 된지 오래』라며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호흡기나 다른 의료기기에 의해 최소한의 생명활동이 가능하더라도 「뇌 기능이 재생할 수 없도록 상실됐을 때」죽음을 선고받는 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행태이다. 하지만 싱어는 무뇌아의 경우나 어떤 뇌 기능들은 뇌피질이 죽었을 때도 계속 활동한다는 문제를 들어 그 기준의 부적절함을 논박한다. 그가 내놓은 새로운 기준은 인지, 각성, 감정반응 등 「인간다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