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미국의 이라크공격 내막
1)이라크의 역사
1.고대중세
2.근대
3.걸프전의 배경
4.걸프전
5.걸프전이후
2)미국의 전쟁의도
3)미국의 군국주의
4)전쟁과 정치윤리
미국의 이라크공격 내막
지난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시의 펜타곤에 대한 테러공격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단지 전적으로 비인간적이며 어떤 의미에서건 옹호할 수 없으며 깊은 조의를 오래도록 표하게 만드는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말만 할 수 있다. 이런 테러리즘은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어려움은 이를 과연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있다. 테러리즘은 테러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내며, 미국은 오랫동안 이 죽음의 게임에서 한쪽 편이 되어왔다. 희생자이기보다는 가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10월7일 아프가니스탄에 군사 공격을 개시함으로 이미 시작된, 테러에 대한 세계 대전이라는 형식의 보복 전략은 앞으로 몇 달, 몇 년 동안 이 비극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연유로, 미국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실체를 조명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그와 함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자국민을 선동하는 정치인의 윤리의 문제라는 것도 조명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 테러 전쟁 선언으로 이라크는 공격대상 영순위가 되어졌다. 이번의 이라크공격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미국과 이라크가 수많은 갈등을 겪어 왔다는 역사적 사례가 설명해준다. 우선 이라크의 역사를 통해 이라크가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입지에 있는지 살펴보자.
1)이라크의 역사
1.고대중세
오랫동안 메소포타니아로 알려져온 이라크는 세계 최초의 문자기록 및 도시 형성이 시작된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
2.근대
99년 오스만인들이 독일인들에게 내준 철도부설권에 자극받은 영국인들은 제 1차 세계대전중 이라크를 침공했다. 영국은 제 1차 세계대전중 프랑스와 밀실협정을 체결하고 대전 후에도 이라크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사용하려 했으나 점차 거세어지는 아랍민족주의 세력확대를 무마하기 위해 1921년 8월 23일 영국의 보호를 받는 후세인가의 Faisal을 초대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이라크 왕국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아직까지 영국의 입김이 이라크 왕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실질적인 이라크의 독립은 1932년 10월 3일까지 이룩하지 못했다. 이라크는 1932년 독립 후에도 제 2차 세계대전까지 각 정당간 주도권 쟁탈전 등으로 정치상황은 지극히 불안했다. 제 2차 세계대전중 전권을 장악한 Murial-Said 입헌통일당 당수는 정치적으로 아랍 6개국과 아랍연맹을 결성하고 영국과의 상호원조방위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친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개발정책실시를 통해 번영을 꾀했으나 전후불황과 정치적 불안등으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게 되자 정당활동을 금지시키고 군부 중심의 독재정치를 1958년 실각시까지 지속했다. 당시 국왕 Faisal 죽음이후 그의 아들 Ghazi 1세가 즉위해 있었는데 그는 다른 아랍국가들과 범아랍운동을 결성하고, 상호불가침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39년 교통사고로 그가 죽자 그의 세 살 난 아들 Faisal 2세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어린 나이로 말미암아 18세 때까지 공식적으로 왕관을 물려받지 못했다. 1948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라크는 요르단과 동맹관계를 체결하고 1949년 4월 휴전이 성사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전쟁을 불사했다. 1950년대 초반에 새로운 국왕 Faisal 2세는 서방 여러 국가들과 협정을 체결했는데, 아랍 계파들은 신랄하게 서방과의 협정을 반대했다. 결국 1958년 7월 14일 Karim Kassem 준장이 주동이 되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Faisal 국왕과 수상 Nuri as-Said를 죽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