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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리더십 사례
1. 이순신
이순신의 활동상을 보면 상황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와 외재적(外在的) 상황 변수에 따른 기지적 대처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우리의 방비 상황과 군정은 왜군이 건너오지 못할 것이라고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했으며, 군정의 근본 문제나 군사를 훈련하는 방법 같은 것은 백 가지 중에서 한 가지도 정돈되지 않았다. 반면에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내의 분열을 통일한 다음 무력 강화와 함께 철저한 침략 계획을 수립하여 조선과의 전쟁 준비를 이미 끝마친 상태였다. 더구나 당시 조선의 조정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어져 상반된 의견으로 영일(令日)이 없었으며, 백성들조차 ‘전쟁 불감증’에 빠져 아무런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직 전라좌수사인 이순신만이 좌수영 관할에 있는 모든 진영을 순시하면서, 함선, 무기, 병사 등 정비되지 않은 부분을 보수하고,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의 탁월한 정보망과 예지능력은 앞으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상부의 지시나 명령만을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지적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일본의 침략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했다고 본다. 도중에 시련도 없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모함하는 무리에 의해 관직을 박탈당하고 옥에 갇히는 곤욕을 당했어도 국가와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결코 식을 줄을 몰랐다.
2. 세종대왕
오늘날 너도나도 민생 정치를 얘기하듯이, 조선 시대의 역대 국왕이나 조정에서도 위민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백성을 위한다’는 구호가 ‘과연 얼마나 실질적으로 정책…
3.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리더십
가 하면 조선 중기에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나라에 바친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장군도 우리 역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 정신은 조선 시대 선비정신에서 면면히 이어졌으나, 혹독했던 일제 시대와 너무 빠른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만 그 맥이 끊기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시 바삐 우리 사회의 슈퍼 리더들이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되찾아, 우리나라가 더 나은 발전의 길로 들어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