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국전쟁이후 산업정책과 기업의 확장
1. 전쟁이후의 산업복구정책
53년 7월 휴전이후 원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이를 뒷받침할 국가의 적극적인 산업복구정책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56년에 이르면 대체로 복구는 완료되었고 연평균 제조업서장률 10%를 넘어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국내 자본형성의 1/4이 미국의 원조에 의해 조달됨으로써 전체 경제구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원조의존적 경제구조가 형성되는 가운데 원조물자의 배정과 실현문제와 관련하여 부패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을 강조하여 50년대 경제를 ‘원조경제’ ‘관료독점자본의 형성’ 등으로 설명하곤 했다. 또는 ‘상업독점’‘저차적 독점’등의 개념으로 비생산과정에서의 자본축적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원조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견해들은 자칫하면 당시 경제상황에서 발생한 모든 비효율성의 근원을 원조로 환원시켜버리거나 어떠한 부문에 투자되었어야만 했다는 식의 정태적 해석에 머물러버릴 위험이 있다. 이제는 오히려 동란과 복구를 넘어선 성장의 기반조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다양하게 파악하는 것이 원조의 본질과 성격규정에 앞서 진행되어야만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 기업의 확장과 기업가활동
귀속재산 불하로 거의 무상의 물적 자본을 획득하긴 했어도 동란으로 인해 생산설비의 파괴가 심했고 이 상태에서 시설을 복구하고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활동을 운영하려면 화폐자본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들 기업이 화폐자본의 원활한 공급이 결여되었더라면 근대적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원조를 통한 생산원료의 조달이다. 곧 귀속재산 불하에 이은 두번째의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원조물자 배정,생산,판매과정마다 다른 영향을 미친다.
우선 원조물자의 배정상황…
입자본면에서의 확대를 허구적인 상업적 이윤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비록 원료배분에 있어 시설규모별로 배당이 달라지기 때문에 무리한 시설확장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확장이 어느정도 설비투자로 이어졌고 생산과정에서의 원가절감의 효과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좀더 적극적인 의의를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즉 노동집약도의 강화와 노후시설개선, 정비, 부대시설설치로 생산성 향상을 어느정도 실현했으며 불황기를 거치면서 또 한차례 자기변신을 도모한다.
마찬가지로 불황과 그 대응양태에 따른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즉 , 58년도 부터 원조가 줄어들고 56/7년의 흉작으로 인한 수요가 감소하는 등 불황이 닥치자 이들 기업은 그간의 과잉투자, 과잉경쟁에 직면하여 예컨대 제당업은 53년 국내수요량의 3배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58,59년에 접어들자 다수가 파산하게 되는 등 곤란을 겪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협정가격을 설정하여 가격을 유지한다든가 제품의 고급 다양화를 통해 국내외시장을 확대시키든가 여러가지 대응을 통해 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기업들도 나타난다. 특히 섬유공업 및 식료품공업, 면방 소모방에서는 수직적 일관경영이나 수평적 다각경영을 시도하고 업종을 변화시키는 등 적극적인 대처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불황때문에 삼백공업이 조업단축 및 기업정리가 불가피하였다는 것을 통해 앞의 상인자본설을 전개하는 것은 일면적 파악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업화 초기단계에 기업의 형성과 자본축적과정은 자본시장의 미발달, 자질미숙, 기업풍토의 저급 등으로 이렇게 유통마진에 기생하여 투기적이고 고리대적인 기업가들을 양산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은 서구 자본주의 초기에도 마찬가지로 지적되어온 바 있다. 그러나 양적으로 다수냐 소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60년대,70년대를 이어가는 성장의 주역으로 자기변신을 해 온 전향적 기업가들에게 촛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곧 이후 한국자본주의 발전에서 각종 소비재부문 또는 생산재부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