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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근현대 역사 고찰
1. 들어가며
네덜란드의 근대 굴기 역사 중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아주 많다. 네덜란드는 열악한 자연조건과 부족한 지하자원 그리고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강인한 민족성으로 끊임없이 분투하여 굴기를 이루었다. 그들은 처한 환경에 맞추어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고 활용하는 데 뛰어났으며, 치밀하고 철저한 계획하에 경제 이윤을 극대화하여 막대한 부를 창출해냈다. 이러한 요인들이 가장 크게 적용된 분야가 바로 어업, 수공업, 농업이었다. 네덜란드는 이 세 가지 분야의 발전을 기반으로 재력을 갖춘 다음 해외 팽창을 시도하여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2. 농업과 어업의 발전
우선 어업의 경우를 보면, 당시 네덜란드에서 청어 포획은 ‘금광’으로 통할 정도의 큰 이익사업이었다. 청어 가공에는 고기 잡는 사람, 내장을 발라내는 사람, 생선을 소금에 절여 통에 넣는 사람 등의 분업 체계가 존재했다. 이러한 체계는 생산력을 증대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도시 상인들의 자본이 투자되면서 청어 가공 산업은 대규모 생산 공정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효율적인 어업관련법규는 청어산업을 더욱 발전시켰다. 청어산업의 중심 도시인 5개 항구에는 어민들로 이루어진 ‘대어업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 위원회는 의회로부터 일련의 법적 권리를 부여받아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어선은 출항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시스템은 청어의 국가경쟁력을 높여 유럽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농업 역시 어업에 못지않은 놀라운 발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형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물난리가 매우 잦았다. 그래서 마을마다 둑과 제방을 쌓아 바다와 호수, 습지 등을 육지로 만들었다…
3. 시장의 발달과 해상운송 혁명
동인도회사는 국가가 부여하는 각종 특권에 대한 조건으로 2만
선체 아래에 집중시킨 플류트선(Fluit)이라는 화물수송선을 만들었다. 이런 모양 때문에 플류트선은 뚱보선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 화물선을 계기로 시작된 조선업의 발달로 네덜란드는 해상운송사업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조선업이 발전하자 네덜란드는 발트해 무역을 통해 국내 경제발전을 확대시키는 한편, 원양항해를 통해 대외 확장을 꾀했다. 당시 유럽의 신흥 자본 계급들이 앞 다투어 세계로 진출했듯이 네덜란드 역시 동서 두 방향으로 나누어 해외무역 확장을 진행했다. 동쪽으로는 아시아 대륙 및 인도양과 태평양의 무수한 섬나라를 겨냥했으며,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무역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대외활동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해외무역 전문 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이다. 사실 네덜란드의 아시아 무역은 포르투갈, 에스파냐와 비교할 때 1세기가량 뒤늦은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이미 동인도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주목되는 것은 그것이 근대 주식회사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1595년 4월, 암스테르담 상인 7명이 모여 원거리회사를 설립하고 동방 탐험을 위한 함대를 파견했다. 첫 항해에서 인도양 탐험에 성공했고, 다음해 인도네시아 자바에 상업 도시 반탐을 건설했다. 이러한 성공은 국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새로 생겨난 수많은 동방무역 회사들이 줄지어 아시아로 진출했다.
그런데 난립하는 동방무역 회사를 관리하고 조정해 줄 통일된 지휘 체계가 없었다. 게다가 상품 확보를 두고 벌어지는 과다경쟁은 여러 가지 손실을 가져왔다. 그러자 무역회사들은 서로 힘을 합해 ‘연합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동인도회사에는 거대 자본이 모여들었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되었다. 의회는 동인도회사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면세권을 부여했고, 식민도시에 대한 행정과 사법, 국방의 권리까지 부여했다. 한마디로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의 대사관 역할을 한 셈이었다.
동인도회사는 국가가 부여하는 각종 특권에 대한 조건으로 2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