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일제강점기 이전의 지역사회복지
민간부문의 지역사회복지 : 전통사회에서 민간부문의 지역사회복지는 주로 국가나 군 단위의 행정적인 복지사업과 부락 단위의 민소적인 협동관행으로 이루어졌다. 기존의 전통적인 지역사회복지는 촌락 단위의 자주적인 복지관행으로 실시되었다(이규태, 1979: 33). 따라서 민간 단위의 지역복지사업은 촌락중심으로 두레, 계 품앗이, 향약, 기타 협동관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두레
전통사회의 민간협동체 중 하나로서 촌락 단위로 조직된 농민들의 상호협동체다. 두레는 원시공동체에서 유래한 유풍으로서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원시적인 농민중심의 협동체라고 할 수 있다(권태준, 김광웅, 1981: 147-149). 또한 촌락공동체의 내부질서를 이끌어 온 협동조직체로서 공동방어, 공동노동, 공동예배, 공동유흥, 상호관찰, 상호부조 등 공동소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외부 경제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내부질서가 해체되고, 구조와 계층이 분화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현재 두레조직은 소멸되었으나 지역사회의 공동주의 정신은 내면화되어, 아직도 농촌사회의 자치와 협동의 잠재적인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 두레조직이 쇠퇴하게 된 근본 원인은 다음과 같다.
· 농지 소유의 분화로 말미암은 이해간계의 대립
· 농민들의 의식변화
· 농지개혁으로 말미암은 경제적 기반 상실
· 두레조직의 내재적 한계성과 그 폐단 등
(2) 계(契)
유래와 연대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것은 신라 초기의 유리왕 때 가배계에서 시작되었다(홍승직, 1969: 428). 특히 향도계는 신라시대의 화랑도에서 유래된 남성조직으로서 최초의 계조직이었다. 본래 계조직은 …
· 공익을 위한 것
· 산업을 위한 것
· 영리를 위한 것
· 친목을 위한 것
(3) 품앗이
(4) 향약(鄕約)
환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배항달, 이남구, 1974: 21-22). 품앗이는 사회윤리적인 원리와 사회공리적인 질서의 조화를 의미함과 동시에, 임의적이고 비타산적인 협력에 구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소규모 농촌 구조하의 농민사회가 자조적인 지역사회의 향상을 이룩하려는 협동체라고 볼 수 있다.
품앗이와 두레 간에는 지역사회에 노동조직의 규모에서나 노동의 성격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다(홍승직, 1969: 358). 즉, 품앗이는 지역사회의 ‘이익사회적(Gesellschaft)’ 성격을 띠고 있다. 이에 비해 두레는 공동작업이나 공동노동이 ‘공동사회적(Gemeinschaft)’ 성격을 지닌다. 품앗이의 관습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으며, 자가노동력을 제외한 농번기의 집중적인 노동 수요는 산간부락에서 그 전통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평야중심 지역에서는 작업반 조직으로 대체되고, 도시 근교부락에서는 대부분 일용 형태로 대체되었다(김일철, 정영일, 1977: 177-178).
(4) 향약(鄕約)
향약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주민들의 순화, 덕화, 교화를 목적으로 한 지식인 간의 자치적인 협동조직을 말하며, 전통적인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민간중심의 자치적인 상부상조 활동이다. 이는 오늘날 지역사회복지의 정신, 활동 등과 상통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향약은 중국의 송나라 서안부의 현(懸)에 거주하는 남전지역의 여씨 형제에 의하여 최초로 만들어졌는데(김유혁, 1977: 330), 이는 ‘남전여씨향약’은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으며, 성종 25년에는 연산군 4년 동안 안음현감으로 있던 유학자 정여창이 향약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향약을 베풀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근거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중종 11년에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서 진해의 여씨 향약을 관내에 시행토록 할 것을 향약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후 향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