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봉건제도
◐ 서 론 ◑
서양의 중세 사회는 기사, 농민, 성직자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사회를 이루었던 기초는 봉건제도였다. 봉건제도란 주종간의 쌍무적 계약 관계를 기반으로 한 제도나, 중국의 주나라에서 혈연에 기반을 둔 통치 조직을 말한다. 서양의 중세 사회는 기독교적 종교를 기반으로 사상을 통합하고, 이러한 봉건제도를 기초로 하여 사회를 이끌어 나갔으며, 질서를 유지하고 생활해 나갔다. 봉건제도는 중앙 집권 제도의 해체와 사적 보호 제도의 증대로 인해 주종간에 이루어졌으며, 또한 9세기 중반에 뚜렷한 형태를 갖추면서 11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지배적인 사회 체제가 되었다. 이것들을 기본적으로 알고 봉건제의 개념과 기원, 성립, 발달에 이르기까지를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어떠한 특징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 본 론 ◑
Ⅰ. 봉건제 개념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
역사상의 중요한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 치고 그 정의에 대한 논란이 따르지 않는 말은 거의 없다. 가령 르네상스나 절대왕정, 또는 자본주의나 제국주의 등 얼핏 생각나는 몇몇 보기만을 골라보아도 이런 용어들의 개념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논의와 얼마나 큰 의견대립이 있어왔는가,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그 뜻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또 이에 관한 견해차이가 큰 것이 바로 “봉건제”란 말일 것이다.
봉건제란 개념은 초기 유럽사의 어느 사실로부터 추출한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개념 자체가 사실들 중의 어느 하나인 것은 아니다. 정복왕 윌리엄이나 부이용(Bouillon)의 고드프리의 시대에는 그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후대의 학자들, 주로 18세기의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 학자들은 당시…
1. 법제사적 해석
2. 정치적 해석
적 봉사가 아니라 예를 들면 가계의 관리나 군사적 복무와 같은 특수한 전문직 봉사였다. 그리고 그러한 군사적 봉사는 주로 주종제 하에서 주군에 대한 종신의 군사적 봉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봉사에 대한 보수로 급여된 재산은 처음에는 주로 금품이나 가축 등이었지만, 군사적 봉사가 일반화됨에 따라 보수의 형태 또한 토지의 급여로 되어갔다. 17세기 법학자들이 말한 “봉건적” 또는 “봉건제”란 말은 바로 이와 같은 “봉에 관련된” 또는 “봉에 관련된 제도”를 뜻하였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봉건제란 주로 종신의 주군에 대한 군사적 봉사제도와 이러한 군사적 봉사에 대한 보수로서 급여(대여)된 토지의 보유에 관한 법적 제도를 뜻하였다. 한마디로 그것은 주종제 그리고 이와 결부된 봉토에 관한 법제도였다.
2. 정치적 해석
봉건제를 주종제적 군사조직과 봉토에 관한 법제도로 이해한 이러한 법제사적 해석을 확대하여 이를 하나의 통치방식으로 파악하게 된 것은 17세기 말 영국의 국제법사가인 H.스펠만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봉건적 “종속조직이 서양 여러 나라에 대하여 공통적인 사회적, 정치적 구조의 소재를 제공하였다.” 고 파악함으로서 봉건제 개념에 대한 이른바 정치적 해석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18세기 계몽사상가들에게 계승되어 그후 19세기를 통하여 봉건제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몽테스키외와 볼테르였다.
몽테스키외는 봉건제란 말 대신 봉건법(lois feodales)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이를 “역사의 한 시기를 특징짓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권력이 주종제와 봉토조직에 입각하고 있던 “수많은 소 영역제후 혹은 심지어 촌락의 영주들 사이에서까지 세분되어 있던 상태를 중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여겼다. 즉 그는 봉건제의 기본성격을 이러한 봉건제후들에 의한 지방분권적 통치방식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봉건법을 ”세상에서 오직 한번만 일어난 사건“이라고 하며 이를 세계사상의 보편적 현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