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향가에 나타난 사상적 배경
序
(1) 불교의 유입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논리적인 바탕을 근거로 성립된 시기는 눌지왕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신라에는, 고구려의 소수림왕 시기에 불교가 전래되었으며 공인되는 시기는 법흥왕 때로 약 100여년의 시간차가 생긴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신라에서는 샤머니즘의 끈질긴 저항이 있었으며 대중적인 종교로 자리잡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이 불교가 공인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차돈의 순교이다. 초창기에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화하고자 했을 때 가장 반대했던 세력은 신라의 귀족세력이었다. 그들이 반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교가 만민평등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만민평등사상에 약간의 수정을 가함으로서 100년간의 끈질긴 갈등이 끝나고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되기에 이른다. 이 약간의 수정은 불교의 윤회 사상과 미륵보살에 대한 신앙이다. 불교의 윤회사상은 공덕사상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신라의 엄격한 골품제도를 정당화시켜주는 면이 있었고 미륵사상은 귀족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성격을 가졌고 실제로 불교 공인 후에도 귀족 중심으로 수용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신라의 불교는 그것을 공인하려는 왕실 측과 무속신앙을 고수하며 반대해온 귀족과의 갈등으로 이차돈이 순교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윤회사상과 미륵보살이라는 불교의 사상에서 그 타협점을 찾아 공인에 이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신라 불교의 특징
신라 불교의 특징은 호국불교사상, 미륵사상, 불국토사상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신라 시대 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은 호국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신라에서는 백좌강회나 팔관회와 같은 호국법회를 자주 열었으며 특히 황룡사 9층탑은 9개국을 정복하여 그 조공을 받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 세운 것인만큼 더욱 신라 불교의 호국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겠다.
두 번째 미륵사상…
(3) 안민가
가
今日此矣散花唱良 오늘 이에 산화를 불러
巴寶白乎隱花良汝隱 뿌리온 꽃아, 너는,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곧은 마음의 명을 부리옵기에
彌勒座主陪立羅良 미륵좌주를 모셔라!2)
신라 35대 경덕왕 때 지어진 월명사의 도솔가는 두 개의 해가 나타나 열흘이나 없어지지 않자 이를 퇴치해 달라는 왕의 부탁을 받은 월명사가 지은 노래이다. 월명사는 미륵의 가피력에 호소함으로써 천재지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 왕에게 이런 노래를 지어 바쳤던 것이다. 이런 가정은 미륵의 현신으로 보이는 한 동자가 나타나 왕과 월명사에게 실증적 증거를 보였다는 설화 후반부의 내용에 근거를 둔 것이다. 하늘의 두 해 중 하나는 현재의 왕에 도전할 세력의 출현을 예견해준다. 이러한 세력의 출현은 혼돈을 빚고, 그래서 이 혼돈을 조정할 행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기 위하여 행해진 의식이 산화공덕이고, 이 의식에서 불려진 노래가 <도솔가>이다. 그러나 이 산화공덕은 순수한 불교적인 관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재래의 천신숭배사상이 미륵하생관념(彌勒下生觀念)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용되어 미륵좌주로 나타나, 계를 지으라고 함에 향가로 대신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즉, 이 <도솔가>는 미륵사상에 바탕을 둔 향가라 할 수 있다.
(3) 안민가
君隱父也 君은 아비요
臣隱愛賜尸母史也 臣은 사랑하시는 어미요,
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 民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실진댄
民是愛尸知古如 民이 사랑을 알리라.
窟理叱大 生以支所音物生 大衆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
此 惡支治良羅 이를 먹여 다스릴러라.
此地 捨遺只於冬是去於丁 爲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