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태서문예신보
①『태서문예신보』에 대해..
1918년 9월 창간되어1919년 2월 통권 16호로 종간되었다. 타블로이드판, 8면이다. 초기에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고 문예작품 외에도 취미 기사를 실었으나 곧 문예지로 전환하였다. 주로 시·소설·수필·시론·번역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김억·이일·장두철 등이 중심이 되어 서구 문예의 도입과 소개에 주력하였다. 창간호에서 `본보는 태서(서양)의 유명한 소설·시·산문·가곡·음악·미술·각본 등 일반 문예에 관한 기사를 문학대가의 붓으로 직접 본문으로부터 충실하게 번역하여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듯이 대부분 서구문학 작품과 사조에 관한 글을 실었다. 코넌 도일의 《충복》, 투르게네프의 《밀회》 등의 번역소설을 비롯하여 베를렌이나 구르몽 등의 프랑스 상징파 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소개하였다. 이외에도 백대진의 《뉘우침》, 김억의 《봄은 간다》 등의 창작시와 《최근 태서문단》 《시형의 음률과 호흡》 등의 평론을 실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김억의 번역시와 시론은 한국 근대시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김억은 이 잡지에 발표한 번역시를 모아 1921년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인 《오뇌의 무도》를 펴냈다. 많은 번역시와 외국 시론의 소개로 한국 근대문학 개화에 이바지하였다
② 창작배경
『태서문예신보』는 1918년 9월 26일 발행인 윤치호, 주간겸 편집인 장두철에 의하여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로 1919년 2월 16일까지 약 5개월 동안 16호를 내었다. 발간 당시에는 종합지의 성격을 띠고 문예 작품 이외에도 취미 기사를 실었으나, 그 뒤 곧 문예지의 성격을 띠었다. 윤치호가 밝힌 창간사의 사설을 요약하면 서양의 저명한 …
이 신보에서 서구 이론의 소개와 번역으로 활약한 사람들은 장두철, 안서, 백대진, 상아탑 등이 있다.
③ 문학사적 의의
<<참고문헌>>
1. 이상비, 《한국문학사의 재평가》이회문화사, 1997.
2. 한국현대문학연구회, 《한국 현대 시론사》, 모음사, 19922
3. 김혜니, 《한국근대시문학사연구》, 국학자료원, 2002.
4. 심상정, <1910年代 文藝誌 硏究 -「學之光」「靑春」「泰西文藝新報」「每申文壇」을 中心으로> 대구대학교, 1986.
5. 김용직 《한국근대시사》, 새문사, 1983.
4. 심상정, <1910年代 文藝誌 硏究 -「學之光」「靑春」「泰西文藝新報」「每申文壇」을 中心으로> 대구대학교, 1986.
5. 김용직 《한국근대시사》, 새문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