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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시대의 소설
1) 이기영
민촌 이기영은 1895년 5월 6일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였으나 세 살 대에 부유한 친척이 사는 천안으로 이사하여 소작을 하면서 성년이 되기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11세인 1906년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부음을 듣고 낙향한 부친 이민창은 다시는 상경하지 않았는데 상당한 수준의 개화사상을 가졌던 사람으로 안기선(안막의 부친), 심상면 등과 천안 사립 영진 학교를 창립하고 총무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성격 탓에 “술집을 거져 지나는 법이 없고 외상 안진 주점이 없고 외상 안주는 집도 없을” 정도로 술에 젖어 살았던 까닭에 오래지 않아 빚 때문에 집마저 빼앗기고 친척의 행랑살이로 전락하고 만다.
집안의 급속한 몰락과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연이어 일어는 가족과(1918년 조모와 부친이 열흘 간격으로 죽음), 삼촌과 민촌(14세인 1909년)의 결혼은 극도의 가난에 몰아 넣었다. 이 때의 ‘가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민촌으로 하여금 그의 작품에서 소작농임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의식과 생활을 폭 넓게 형상화할 수 있게 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구름 속에 든 태양 같은 그늘지고 실심한 기분 속에서 그날 그날을” 살던 그는 이웃 어른의 권유로 마음 붙일 것을 찾아 고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만일 모친상을 일찍 당하지 않았던들 나는 그대 이야기책을 탐독하지 않았을 것이요 따라서 문학과는 인연이 멀어졌을 지도 모른다”고 회고하고 있으며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이 문학의 길로 인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1918년 기독교 계룡 논산 영화여고 교원 생활을 하고 교회의 권서 직책을 맡기도 했으나 차차 기독교적 인물에 대한 비관적 묘사로 이어진다.
1922년 4월 초 동경 유학을 떠나 정칙 영어학교를 다녔는데 이 때에 처음 사회주의 서적을 접했으며 특히 고리끼의 작품을 애독했다.
민촌은 1924년 상경하여 “개벽…
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 이 때 동경 유학생 정광조의 발언에 힘입어 돌쇠가 자기 입장을 밝힌다.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노름한 이유와 이쁜이에게 욕심을 채우려 한 자가 원준임을 폭로한다. 돌쇠는 이쁜이와 함께 집으로 오면서 유학생 정광조의 합리적인 사리 판단에 감격하며 그런 세상을 동경한다.
3.1운동 직전 `반개울`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중편소설로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서화(鼠火)는 곧 `쥐불`인데, 농사에 해로운 쥐나 벌레를 없애기 위해 정초에 논둑이나 밭둑을 태우는 일이다. 동시에 농민의 생기를 상징하고 있어 의미 심장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쥐불도 농촌의 피폐와 더불어 해마다 시들먹하다.
민촌(民村) 이기영의 작품은 식민지 자본주의로 돈을 벌어 새로 득세하는 계층과 그들에게 토지를 빼앗겨 더욱 가난해진 농민과의 갈등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돌쇠는 가난한 농민의 대표적 인물이다. 돌쇠는 농사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노름으로 돈을 따서 식량을 마련한다. 또, 가정을 가진 돌쇠는 응삼이의 처 이쁜이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한다. 그러나 돌쇠와 이쁜이가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랑의 과정보다는 조혼과 강제 결혼의 폐해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결국, 조혼과 강제 결혼도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라는 데에 이 소설의 의미가 있다. 도박과 간통도 경제적 동기로 합리화되며, 경제 논리가 도덕적 규범보다 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기영의 초기 작품에 비해서 도식적 계급 의식과 목적 의식을 벗어나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으로 `서화`가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빈농으로 전락한 돌쇠와 부농으로 부상한 원준이라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확장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기능은 소설 후반부에서 돌쇠에게 지적(知的) 자극을 줄 정도로 미미한 것이며,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은 장편 소설 `고향`의 김희준에 와서야 선명히 드러난다.
▶ 고향
줄거리 - 1920년대 말 원터 마을, 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