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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에 비추어 본 남북한의 통일 방법 분석
신라, 백제, 고구려로 정립이 되었다가 통일이 될 때까지는 약 700년이 걸렸다. 통일이 된 건 문무왕 8년, 서기로 668년이라고 생각하는데, 3국 통일을 위해서 신라가 여러 가지 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서두른 지 120년 만에 통일이 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진흥왕 때부터 120년 간에 화랑도를 만들고, 국민들을 훈련하고, 정신 교육을 하고, 삼국 통일에 대한 대비를 해서 120년 만에 비로소 통일이 되었던 것이다. 또, 통일이 될 때에는 신라 단독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당나라의 힘을 빌어 가지고 통일을 했다. 통일을 한 다음에도 당나라 군사가 생각이 달라져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눌러 있으려 하였기 때문에 김유신 장군이 지휘하는 신라의 군대가 당나라 군대와 근 10년 동안 혈전 고투를 해서 당나라 군사를 쫓아내고 완전히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볼 때, 184년 후한이 멸망하고 황건적의 난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위,촉,오에 의해 나라가 삼분되었다. 이중 촉나라를 세운 유비에 대한 내용을 삼국지에서 살펴보면 유비가 조조의 세력에 밀려 양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제갈량을 얻기 위해 그의 초려로 찾아가는 도중 최주평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유비가 그에게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기 위해 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에 필요한 인물을 구한다고 말하지만 최주평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평화 시대와 전시는 그 때와 반복됨이 가지런한 것으로 그 동안 지속된 평화로운 시대도 한계가 와서 이제는 그와 반대되는 시대가 어느 정도 지속될것으로 보이므로 통일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때를 기다리라 말했다. 또한 제갈 공명의 삼분지책도 그 시대 식자들의 공통된 의견의 최주평의 의견과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184년에 시작된 삼국시대는 280년 진에 의해 통일되기 까지 약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위의 예를 들어 말하고자 …
이기 때문에 아직 가시적인 혼란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안에서 안으로 혼란이 번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혼란의 폭발은 폭동에 의해 가속화 되고 군권에 의해 완전 장악된 북한 사회도 군부의 분열과 다툼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이런 북한의 분열과 자멸에 의한 통일을 기대할 때 우리는 끝없는 인내와 정보의 충분한 수집,그리고 강력한 군사력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북한의 분열이 최고조에 이를때가지 얼마간의 시간이 소요될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기간을 인내로서 보내야 하고 충분한 정보의 수집이 필요한 이유는 불명확하게 북한 상황를 알고 있다가 혼란이 있다고 하여 끼어들었다가는 오히려 북한의 내부적 결속력을 강화 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상황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일단 혼란이 극에 달하면 과감한 결단력을 가지고 저항의 의지마져 꺾어버릴 강력한 군사력으로 혼란을 안정시키고 통일시키는게 한 방법이라 주장한다. 물론 분열과정에서 망명이나 귀순해오는 사람을 포용하는데 최대한 배려를 함으로써 남한 사회에 대한 저항감을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다.
제 3세력(외부세력)이 가세된 통일
백제의 압력을 받고 국세가 크게 위축된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려서 백제에 보복을 하려고 했으나 고구려는 한강 유역의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신라의 부탁을 거절했다. 결국 신라는 당의 힘을 빌리게 되었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고 고구려 또한 같은 길을 걸어 망하게 되었다. 한번의 외교실패로 나라의 흥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만주의 넓은 영토를 잃어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그 같은 외교정책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길이었다.
그럼 다시 현시대에 비추어 볼까.
북한과 남한을 1:1상황으로 볼 때 분명 우리가 군사적으로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통일 목표